'일상을 여행처럼'이라는 말을 내내 가슴에 품지만 일상은 일상이지 결코 여행이 될 수 없다.
처음 다시 회사로 들어갔을 땐 여행이 일상을 바꾸지 못했다는 사실에 좌절했다.
여행 중에 다양한 삶을 보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마음의 그릇을 키워 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상으로 돌아가면 다 잘 될 줄 알았다.
그건 큰 착각이었다. 변한 건 하나도 없었다.
여전히 아침이 되면 눈뜨기 싫고 주말만을 기다리는 삶을 사는 건 마찬가지였다. 상사나 직장동료의 작은 행동에도 화가 나고 투정 부리기 일쑤였다.
딱 하나 바뀐 게 있다면 오히려 더 작아진 나의 인내력이다.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먹고 싶을 때 먹고, 어디든 이곳저곳을 쏘아 다니며 자유로운 삶을 살다가 높은 빌딩 속 사무실 안에 콕 박혀 9 to 6라는 족쇄를 견디는 일은 엄청난 인내심을 발휘해도 매번 어렵기만 하다.
몇 년째 이 생활을 하는 사람이 들으면 코웃음을 치겠지만,
다시 이 패턴에 익숙해지기 위해선 몇 배는 더 버티는 힘이 필요했다.
좋은 순간을 기억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런 것들이 더는 버텨야 할 존재가 아니게 된 걸까?
그러다 내가 좀 더 단단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얼음틀에 얼음이 단단해지기 전엔 어느 모양의 틀에든 잘 자리 잡을 수 있는데 한번 단단해진 얼음은 다시 녹이지 않는 이상 다른 모양으로 쉽게 들어갈 수 없다. 나도 어쩌면 이 단단해진 모양을 녹이거나 부숴내야지만 다른 틀에 들어갈 수 있는 얼음의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은 아닐까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한건 내가 단순히 견디는 힘이 약해진 인내력이 부족한 사람이라거나, 사회 부적응자가 된 것이 아니란 의미로 생각하고 싶어서다. 그만큼 나라는 존재가 어떤 모양을 단단히 잡아가고 있는 중인 탓이라는 생각이 드니 한편으론 기쁜 마음이 들었다.
내가 만들어 가고 있는 모양과 비슷한, 어쩌면 딱 떨어지는 얼음틀을 만나게 될 수도 있는 일 아닌가? 그러니 너무 좌절하지 말자고, 어딘가는 존재할 거라고 다독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