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 시내 여행하기
새벽 4시, 익숙하면서도 낯선 거리를 걸어 공항버스를 타기 위해 문래역으로 향했다. 문래역에서 공항까지 가는 버스 노선이 바뀌어 이제 1시간 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매일 출퇴근길에 걷던 문래역이지만, 오늘은 출근이 아닌 여행을 떠나는 날이라 색다르게 느껴졌다.
오전 4시 37분, 공항버스가 도착했고 기사님이 밝게 인사해 주었다. 넓은 좌석 덕분에 마치 우등버스를 탄 듯 편안했다. 그동안 전철로만 공항에 갔기에 버스를 타고 가는 경험이 새롭게 다가왔다.
오전 5시 40분, 정확히 1시간 만에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공항은 이미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환전을 하려고 줄을 섰는데, 새벽의 분주함 속에서도 여행을 떠난다는 설렘이 가득했다.
히로시마 공항에서는 히로시마역과 히로시마 버스센터로 가는 버스가 운행된다. 나는 히로시마역 근처 호텔을 예약했기 때문에 공항 2번 승강장에서 버스를 타야 했다. 혼자 여행할 때는 빠르게 이동하기 위해 기내용 캐리어와 운동화를 꼭 챙긴다. 입국심사를 빨리 마쳐야 일정도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입국심사를 서두르려고 노란색 캐리어를 거의 끌어안다시피 하고 달려 첫 번째로 입국심사장에 도착했다. 심사를 순조롭게 마치고 나오니 마침 2번 승강장에 히로시마역행 버스가 도착해 있었다. 골든위크라 현지인들로 붐볐고, 줄이 길어 나는 거의 마지막 순서로 버스에 탔다.
버스에는 젊은 커플들이 많았고, 골든위크 특유의 들뜬 분위기 덕분에 평소 일본 버스에서는 보기 드문 활기찬 대화가 오갔다. 히로시마가 일본 내에서 인기 있는 여행지인 만큼 외부에서 온 사람들이 많아 보였다.
히로시마역에 도착하자마자 호텔에 짐을 맡기고 세븐일레븐으로 달려갔다. 미리 트레블로그 카드에 환전해 둔 엔화를 ATM에서 인출하려고 했다. 일본에서는 카드 사용이 어려운 곳이 많아 현금이 필수다.
트레블로그 카드로 인출할 때는 늘 헷갈려 두어 번 실수를 하곤 한다. 한국어 메뉴를 선택하고 보통 예금을 누른 뒤 엔화로 출금해야 하는데, 자꾸 원화 출금 버튼을 잘못 누르는 실수를 한다.
현금을 인출한 후 히로시마에서 가장 가고 싶었던 카페로 향했다. 이곳은 조식으로 유명한데, 조식 제공 시간이 원래 오전 11시까지지만 운이 좋으면 11시 30분까지도 주문할 수 있다는 리뷰를 보고 서둘렀다.
도착하니 약간의 웨이팅이 있었고, 들어갔을 때는 딱 11시 30분이 되었다. 카페에는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들이 음식을 만들고 있었고, 젊은 웨이터가 서빙을 담당하고 있었다. 나는 낡은 오븐이 놓인 바 테이블에 앉아 할아버지가 빵을 굽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잠시 후 웨이터가 조식 메뉴를 추천해 주었고, 빵을 굽던 할아버지도 웃으며 조식이 가능하다고 알려주었다. 역시 조식으로 유명한 카페답게 손님들은 모두 조식을 즐기고 있었다.
구글 리뷰에서 봤던 사진의 설렘이 현실이 되었다. 지브리 만화에 나올 법한 두툼한 식빵 위에 버터, 딸기잼, 사과잼, 블루베리잼이 발라져 있었고, 커피가 함께 제공되었다. 갓 구운 식빵은 바삭하면서도 부드러워 기대 이상이었다.
오븐의 열기가 전해지는 바 테이블에 앉아 있었지만, 열심히 빵을 굽고 커피를 내리는 할아버지들을 보니 마음이 따뜻해졌다.
커피가 포함된 모닝 세트는 990엔이었고, 마지막에는 초콜릿까지 서비스로 제공되었다. 골든위크 동안에는 가게를 열지 않는다고 해서 아쉽다고 하자, 할아버지는 내년에 꼭 다시 방문해 달라며 웃으셨다.
이곳은 현지인들이 자주 찾는 곳이라 외지인은 거의 없었다. 옆자리의 단골로 보이는 아저씨는 약간 불편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한참을 먹고 있을 때 한 여성이 들어와 자리에 앉더니, 안경을 쓰고 신문을 읽기 시작했다. 신문은 카페에서 제공한 것이었고, 그녀는 마치 이곳에서 하루를 시작하는 듯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문 대신 인터넷 뉴스를 보는 게 익숙한데, 이곳에서는 시간여행을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샐러드는 양배추가 듬뿍 들어 있었고, 사과와 당근이 섞인 소스가 곁들여졌다. 할아버지는 샐러드에 소스가 부족하지 않은지 살피며 세심하게 챙겨 주셨다. 커피는 산미 없이 고소했고, 설탕과 우유를 넣어 취향에 맞게 즐길 수 있었다.
이 동네에 산다면, 새벽에 산책한 뒤 할아버지와 대화를 나누며 신문을 읽고 바삭한 빵을 먹으며 느긋하게 아침을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상상을 하며 아쉬움을 안고 가게를 나섰다.
골든위크에는 문을 닫지만, 이곳의 따뜻한 분위기는 언제나 남아 있을 것 같았다. 나중에 꼭 다시 방문하고 싶은 카페가 하나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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