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이 차올랐다. 기분은 한없이 가라앉고 다시 의미를 찾는다. 괜찮아지는 사이 괜찮지 않은 순간으로 매번 되돌아가고 나는 지쳐간다. 언제쯤이면 괜찮아질 수 있을까. 괜찮아질 수 있기는 할까. 우울의 틈에 죽고 싶은 마음이 자라났다.
죽어야 할 이유를 찾기 시작한 내가 진저리 치게 싫었다. 그럼에도 그만둘 수가 없었다. 우울은 그런 존재니까. 공허만 가득 찬 방 안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욕실 문에 목을 매단 내가 더 이상 보이지 않았으면 했다. 그런 내가 더 이상 찾아오지 않았으면 하고 빌었다.
'죽고 싶어. 죽었으면 좋겠어. 내일이 기대되지 않아.'
마음은 끊임없이 내가 죽기를 종용하고 나는 도망치듯 고개를 젓는다. 나는 살고 싶은 걸까. 죽고 싶은 걸까. 죽고 싶은 나와 살고 싶은 나의 싸움은 격해지고 죽기 위해 모은 약을 손에 쥐고 압박 붕대를 꺼냈다.
'살고 싶어. 살아냈으면 좋겠어. 어차피 지나갈 테니.'
나는 손에 쥔 것을 다시 내려놓았다. 눈물이 났다. 죽었으면 하는 마음이 아쉬움을 드러내며 나를 옥죄어왔다. 살고 싶은 마음이 버거웠다. 이제 그만하고 싶다는 우울로부터 벗어나 일상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살고 싶다는 마음이 이겨낼 수 있을까.
'사는 건 고되고 죽는 건 무서워.'
죽지 못할까 봐 무섭고 정말 죽어버릴까 봐 무섭다. 살고 싶은 마음이 죽고 싶은 마음에게 온전히 지면 무섭지 않을까. 살아내는 건 이토록 고되고 힘에 겨운데 왜 살고 싶을까. 살고 싶은 건 맞는 걸까.
우울은 늘 그렇듯 절망으로 나를 밀어 넣고 최악의 생각으로만 나를 채운다. 살고 싶은 우울과 죽고 싶은 우울이 공존하는 이상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멈춰 선 채 나아가지 못하겠지.
생각을 멈추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비척대며 걸어 욕실로 향했다. 우울은 수용성이라고 누가 그랬더라. 씻고 나니 우울이 조금은 가라앉았다. 오늘은 상담이 있는 날. 한 시간 반동안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내 상황이 좋지 않음을 말했으나 상담 선생님은 그 안에서 좋은 점을 끄집어냈다.
"이것 봐요, 소한씨. 소한씨는 ...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라고 끝없이 말해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혼란스러웠다. 맞는 걸까 라는 의심은 지워지지 못했지만 반박하지 않았다. 그저 맞겠거니 고개만 끄덕였다.
상담이 끝나고 조금은 기분이 나아졌다. 쏟아낸 말의 무게만큼 가벼워졌다. 우울은 그렇더라. 정말 죽을 것 같다가도 사소한 하나에 사그라들더라. 나는 그렇더라. 그러니 나는 여기 있겠지. 죽지 않고 살아가겠지. 그러니까 살아가야지. 우울이 나를 끌어당겨 결국 끌려가더라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여기 머물러야지.
무력감은 자취를 감추고 기대되지 않던 내일을 기다리며 오늘 하루도 잘 이겨내었다, 나를 기특하게 여기며 오늘을 이어가 내일을 살아야지. 내일도 살아야지. 그렇게 바라며 우울을 밀어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