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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한 Mar 23. 2024

이 모든 게 꿈이기를 바랄게

소설을 써보고 싶다


"오늘은 어땠어?"


늦은 금요일 밤 퇴근 하고 집으로 돌아온 진에게 영이 물었다. 진은 한껏 풀이 죽은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숨뿐, 대답이 없었다. 소파에 앉아 현관 쪽을 바라보고 있던 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 앞으로 다가갔다.


아무 말도 없이 그저 진을 품에 끌어안으며 다독여 주었다. 영은 진이 걱정스러웠다. 단한순간도 그러지 않은 적이 없었다. 진은 늘 위태로웠으니까.


며칠 전 진은 영을 향해 중얼거리듯 말했다.


"죽고 싶어."


영은 너무 놀랐다. 어느 정도 회복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조금은 마음을 놓아도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진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겁이 났었다.


1년 전 여름,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온 영은 거실에 널브러진 약통과 쓰러져 있던 진을 발견하고는 119를 불렀었다.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불안에 떨었다.


품에 안은 진이 너무 작게 느껴졌다. 영은 진을 향해 말했다.


"저녁은 뭘 먹을까?"


진은 여전히 대답 없이 의 품 안에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진아. 네가 좋아하는 초밥 먹으러 나갈까?"


그렇게 말하며 진을 품에서 조금 떼어내어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진은 여전히 같은 표정으로 영을 올려다보며 고개를 젓고는


"씻고 올게."


그렇게 말하고는 욕실로 향했다. 영은 진을 붙잡지 못했다. 진의 우울증이 심해진 처음에는 위로라도 하겠다며 별소리를 다했는데 그 말들이 아무런 의미도 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욕실로 걸어가는 진의 뒷모습만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씻고 나온 진이 영을 향해 말했다.


"영. 너는 밥 먹어. 나 때문에 너까지 굶지 마."


그 말만 남기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거실에 남은 영은 조용한 한숨을 쉬며 얼굴을 쓸었다. 영은 진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고민했다.


꾸준히 정신과를 다니고 상담을 받고 약도 먹는데 진은 왜 나아지지 않을까, 왜 죽고 싶다는 얼굴을 하고 죽고 싶다는 말만 할까. 속을 터놓고 이야기라도 해주면 좋겠는데 진은 말이 없었다.


우울증은 날이 갈수록 더 심해지는 것 같았다. 며칠 전 죽고 싶다는 말을 내뱉은 뒤에는 모든 생기를 잃었다.


진은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걸터앉았다.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괜찮아지지 않는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영에게 짐만 되는 것 같아서 이제 그만 헤어지자고 말해야 하는 걸까. 그런 생각에 슬픔이 차올랐다.


진은 영에게 헤어지자고 말할 수 없었다. 영이 있기에 진은 그나마 아직 살아있을 수 있었다. 영이 곁에서 사라지면 자신도 세상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영은 닫힌 방문을 바라보다 옷을 갈아입고 24시간 초밥집으로 향했다. 진이 좋아하는 연어초밥을 포장했다. 진이 먹어주면 좋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며 걸었다.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온 영은 거실에 나와 있는 진을 보았다. 울었는지 눈가는 빨갛게 변해 있었고 목소리는 잠겨 있었다.


"초밥 사 왔어?"

"응. 연어 초밥으로 샀어."


영은 식탁으로 얼른 가 포장해 온 초밥을 꺼내며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진을 봤다.


"같이 먹으려고 3인분이나 샀는데?"


진은 설핏 웃으며 식탁으로 향했다. 의자를 빼 앉으며 "3인분이나?"라고 말하며 조금 더 웃었다.


영은 진의 웃는 얼굴을 좋아했다. 뽀얀 얼굴에 웃음이 피면 햇살이 가득한 말간 하늘이 생각나고는 했다. 영은 웃는 진을 보며 함께 웃었다. 머쓱한 웃음이었지만.


영과 진은 마주 보고 앉아 초밥을 먹었다. 하나 둘 셋, 몇 개 먹지도 않고 젓가락을 내려놓진은 배가 부르다고 했다. 도대체 뭘 먹기는 하는지 점점 말라가기만 하면서 고작 이것 먹고 배가 부르다니 답답했다.


그렇지만 영은 그것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응? 남은 거 나 다 먹으라고?"

그저 그렇게 말하며 진을 바라보기만 했다.


초밥은 거의 비워지지 못하고 냉장고 속으로 들어갔다. 영은 진이 먹지 않는 이상 혼자 꾸역꾸역 먹고 싶지가 않았다.


양치를 하고 각자의 방으로 향했다.


"잘 자."


서로를 향해 인사를 했다.


영은 방으로 들어와 내일은 토요일이니 진을 데리고 바깥에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디를 갈까,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며 누워 휴대폰을 들여다보다 잠이 들었다.


아침이 되었다. 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욕실로 향했다. 샤워를 하고 나와 옷을 갈아입고 진의 방문을 두드렸다.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문 손잡이에 묶인 끈이 눈에 들어왔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손잡이를 돌려 방문을 열자 진이 문에 매달린 채 있었다.


영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진을 끌어내리고 숨을 쉬는지 심장이 뛰는지 확인했다. 하지만 영은 자신의 심장이 너무 거세게 뛰어 진의 심장 박동인지 자신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진을 흔들며 이름을 불렀다.


영은 자신이 울고 있는지도 몰랐다. 얼른 방으로 되돌아가 휴대폰을 들었다. 휴대폰을 켜자 어제 검색해 보던 내용이 화면에 나타났다. 화면을 끄고 119에 전화를 걸었다.




진은 그날 결국 죽었다. 두 번의 자살시도 끝에 죽음에 이르렀다. 진의 장례는 조용히 치러졌다. 진의 가족들은 진의 죽음을 숨기고 싶어 했다. 장례식장은 고요했다. 오는 사람이 없었고  우는 사람이 없었다. 진의 가족들은 진이 죽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행동했다.


장례식은 그렇게 끝이 났다. 진과 함께 나온 집을 혼자 돌아갔다. 의 방으로 향했다. 바닥에 떨어져 있던 끈이 보였다. 영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내일을 기대하며 내일을 기다린 자신이 한심했다. 진은 오늘을 살며 오늘을 끝낼 생각만 했는데 서로의 시간이 달랐는 생각에 죄책감을 느꼈다.


한참을 울던 영은 진의 책상에서 유서로 보이는 종이를 보았다. 참 간결하게도 적혀있었다. 진은 마지막까지도 조용했다. 그 흔한 인사도 없었다. 그 사실이 서글퍼서 사무쳐서 괴로워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 밤 진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조금만 더 여다볼 걸 그랬다며 후회를 했다. 한참 늦은 후회였다.








_


이 모든 게

꿈이기를 바랄게.

눈을 뜨면 서서히 사라져

아침밥을 먹기 전에

어? 뭔가 꿈을 꾼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을 잠깐 하지만

모두 흩어져

결국 사라져 버리는

그런 꿈이기를 바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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