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소한 Mar 25. 2024

죽어버리길 바라는 너와 살고 싶어 하는 나

09


죽고 싶은 날들이 어느덧 지나고

한 달 정도 거제에 가있어 볼까 생각했다

다음 겨울이 다가오면 제주에 가서 귤을 원 없이 먹어볼까

그리고 12월에는 도쿄에 가고 싶다고 조금 미래를 꿈꿨다


내가 살아있어서 그래도 다행이라고 했더니

너는 불행이라고 했다

그래, 불행히 여겨주면 오히려 좋은 걸지도


제주에, 도쿄에 갈 수 있을까


살아 있을 자신도

돈을 가지고 있을 이유도 없어서

나를 한껏 비웃었다

네가 그랬던 것처럼


그랬더니 다시 씁쓸해졌다

나락이라고 생각했는데

더한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이제 더는 숨기지 않고

너는 나를 한껏 비웃고

나를 절망의 한가운데로 밀어 넣는구나


울 것만 같았다


그래도 내 편이었지 않냐고

너만은 내 편이었다는 생각에

지금이 더 처참했다


초점 없는 눈으로 어딜 보는지도 모른 채 넋 놓고 있었다


그냥 죽을까

생각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울지는 않았다

눈물이 날 것처럼 눈 두 덩이가 뜨거워졌지만

가슴이 먹먹해지고 호흡이 가빠졌지만

그냥 눈만 껌뻑거렸다



사는 건 지독하구나

태어나 보니 살아있어서

어쩔 수 없이 살아온 지금껏 느낀 절망보다

더 큰 절망이 기다리고 있었다


살아낼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살고 싶지 않은 주제에 살아남고 싶어 하는 것도 지쳤다


내가 죽으면 너도 죽는 건데

너는 왜 그토록

나에게 죽어버리라고 악을 쓰는 걸까


죽어버리길 바라는 너와

살고 싶어 하는 나는 같은 나인데

어느 게 진짜 나인 걸까 헷갈려


담배를 꺼내드니 돛대였다

잠옷도 갈아입지 않고

겉옷을 입고 편의점에 가서 담배 한 갑과 샌드위치를 샀다

살고 싶은 게 나인가보다

살기 위해 먹으려고 샌드위치를 사는 걸 보니


바깥을 거부하는 나는

술과 담배를 사기 위해서는 나가야만 했다

술과 담배가 나를 바깥으로 이끈다

10분도 채 되지 않는 길을 걸으며 조금은 기분이 떠올랐다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울 생각으로 들뜬 걸까

덕지덕지 붙은 우울은 조금 떨어져 나왔다

내 주위를 맴돌며 기회만을 노린다


우울아

기왕 올 거 죽음을 가져와 주라


이제는 나까지도

죽음을 부르고 희망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네 뜻대로 되어가는구나

나는 결국 죽겠구나


제주와 도쿄는 갈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며 웃었다

다행히도



* 작년 겨울에 쓴 글

저는 아직 살아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이 모든 게 꿈이기를 바랄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