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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한 Apr 10. 2024

시위와 벚꽃

11 지구불시착 글이다클럽


봄날. 아침 햇살이 내려앉은 침대 위. 느지막하게 일어났다. 눈을 깜빡이며 잠을 쫓고는 '오늘은 뭘 할까' 하고 어김없이 생각에 잠겼다.


생각 속에서만 무언가 했다. 오늘은 바깥에 나가야 할 텐데, 집 안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초조해졌다. 무거운 몸이라도 내가 이끌고 나아가야 하는데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생각 속에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데 현실에서는 쉽지가 않았다.


'봄이니까 벚꽃이나 보러 갈까' 충동적으로 침대에서 일어났다. 욕실로 향하는 마음이 조금은 가벼웠다.


집 근처에서는 시위가 한창이었다. 여성인권에 대한 시위였다. 마스크를 쓰고 피켓을 손에 들고 모여 있는 사람들. 앞에서는 마이크에 대고 소리치고 있었다.


가만히 서서 듣다 보니 여성인권? 의아했다. 남성들이 자행하는 성폭력에 대해 말을 하지만, 이 시위에는 남성혐오가 짙게 깔려 있었다. 듣다 듣다 불유쾌한 기분으로 돌아섰다.


'벚이나 보러 가자.' 그렇게 내 등을 떠밀었다. 사람들의 틈을 지나치며 걷고 또 걸어 창경궁 입구에 섰다. 벚꽃은 아직 보지도 못했는데 피곤해졌다.


그럼에도 입장권을 사서 금천교로 향했다. 사람들은 만개한 꽃을 배경으로 자신들의 사진을 찍었다. 카메라 안에 오늘을 기록하며 웃었더랬다.


나는 혼자 무표정하게 벚꽃을 바라보기만 했다. 그저 지켜보며 서있었다. 내가 보는 것은 벚꽃에서 사람들이 되었다. 혼자라는 사실 숨이 막혀왔다. 집에 가고만 싶었다.


뒤돌아 서 궁궐을 걸었다. 매화꽃도 자두꽃도 앵두꽃도 피어있었다. 벚꽃을 닮은 그 꽃들도 그저 지나쳤다. 걷고 걸어 다시 시위 현장으로 되돌아왔다. 집가려면 지나쳐야 하니까.


한참을 소란스럽게 하던 그들은 움직이기 시작했고 나와는 반대방향으로 걸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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