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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한 May 05. 2024

햄이 되어 있던 오늘의 어느 날

15 '여기에 없도록 하자'를 읽고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우울감. 놓아버린 것에 대한 죄책감. 얻지 못한 기회에 대한 배신감. 그렇게 했던 나에 대한 실망감이 나를 짓누르던 어느 날, 나는 이 책을 읽었다. 과거의 불행과 미래의 불안에 결국 햄이 되어 있던 오늘의 어느 날.


커다란 우물 같은 지구에 갇히고 회사에 갇히고 집에 갇히고 삶에 갇혀 살면서 자유를 갈망하고 매 순간을 햄이 되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며 버티다 결국에 놓아버리고 그렇게 자유를 손에 넣은 날 자유는 사라지고 잃어버린 것들 속에 갇혀 다시 자유를 꿈꾸지만 나는 이미 햄이 되어버렸다. 다른 이들은 자신이 갇힌 지도 모르고 살아가는데 내 우물만은 어느 날부터인가 점점 좁아지고 중력은 나에게만 집중되어 나는 내가 우물에 갇혀있다는 걸 깨달아버렸다.


햄이 되어도 햄이 되지 않아도 결말은 죽음이고 죽음 아니면 삶, 그 사이에서 무언가를 기대하는 게 무모한 거라고 그러니 왜 햄이 아니어야 하는지 알지 못하고 햄이어도 햄이 아니어도 어차피 인생은 자유 따위 없이 구질구질 그저 구차할 뿐인데, 그럼에도 나는 햄이 되지는 않겠다 그런 마음으로 살아왔는데 나는 결국 햄이 되었고 햄이든 햄이 아니든 상관은 없지만 그래도 여기 나를 좀 주워주었으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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