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16
큰 아이가 아장아장 걸을 때쯤 남편은 회사로부터 독일 deligation 제안을 받았다.
첫 해외생활에 대한 설렘과 외국에서 홀로 육아를 해야 하는 두려움이 반반 섞여 다소 흥분된 마음으로 독일 생활을 시작했다.
뮌헨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독일 남부 도시는 한적하고 여유로움이 넘쳤고, 돌바닥으로 울퉁불퉁하고 수 백 년이 넘은 보물 같은 건물로 가득 찬 아름다운 구시가지와 현대적인 세련된 쇼핑몰이 가까운 신시가지로 나뉘어 있었다.
해가 일찍 저무는 유럽이라 남편이 출근하면 10개월이 지난 딸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낮동안의 햇빛을 놓치지 않으려 동네를 산책했고 맑은 날보다 절대적으로 많은 흐린 날씨에 우울해지지 않으려 산책이 힘든 날은 쇼핑몰에서 독일 사람들의 쇼핑문화를 엿봤다.
그때 커피 향이 너무 좋아서 들어갔던 상점이 Tchibo라는 곳이었는데 분명 coffee와 디저트를 파는 cafe인데, 그 안에는 옷, 생활용품, 육아용품, 소형가전까지 없는 게 없는 거다.
뭐랄까.. 멤버십 토털 쇼핑카페라고나 할까?
어쨌든 커피 한 잔을 시켜 마시며 이런저런 물건을 구경하는데 내 눈에 들어온 하나. 바로’ 계란찜기’였다!
지금은 스티머가 꽤 보편적인 편이지만 15년 전 만해도 계란은 냄비 물에 삶는 거였지 알알이 올려 찌는 가전제품은 보기 힘들었달까?
아이 이유식도 수월할 것 같고 유럽 영화에서나 보던 떠먹는 반숙이 요걸로 해서 톡톡 깨서 먹는구나!! 싶으니 어찌나 탐이 나던지.. 냉큼 그 아이를 데려와 우리 집 식구가 된 지 어느새 15년.. 그 이후로도 여러 번의 이사와 긴 해외생활까지 함께한 가전 중에서도 왕선임이다.
요즘은 구운 계란을 사 먹고, 짭짤하게 간까지 밴 감동란 같은 계란도 나오면서 선반 안에 넣어 놓고 있던 이 녀석을, 최근 운동에 재미 붙이고 단백질 섭취를 늘리면서 오랜만에 꺼내 쓰고 있다. 그때 같이 구입했던 에그 컵까지 꺼내 반숙란을 만들어 스푼으로 떠먹다 보니 그립던 그때의 독일 살이가 문득 떠오른다.
처음 사서 따끈한 계란이 짧은 시간에 완벽하게 쪄지는 게 너무 신기했고 타이머만 조절하는 걸로 반숙의 농도를 쉽게 정할 수 있어서 환호했던 미숙했던 초보주부의 그 시절..
이젠 초보 딱지를 벗은 지 오래지만 고소한 반숙 한 스푼에 그리운 추억까지 먹을 수 있어 낡고 변색되어 바꿀까 싶다가도, 고장 나서 우리 곁을 떠나는 그날까지 저 아이를 못 버릴 것 같다. 잠시 그 시절의 행복한 추억이 고소한 계란 한 스푼과 함께 하니 말이다.
#추억 #해외 살기# 음식 #오래된 물건 # 감성 #일상 #egg steamer
*이 글은 주식회사 멘테인에서 서비스하는 <keyping키핑> 모바일앱에 2020년 연재되었던 글을 수정, 편집하여 올리는 것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