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20
처음 오븐으로 빵을 만들었던 것은 15년 전 독일에서 지낼 때였다. 그전까지 오븐을 사용해 본 적도 없고 베이킹의 ‘베’ 자도 몰랐던 나는 10월부터 오후 5시가 되면 어두워지는, 난방이라곤 벽에 붙은 라디에이터가 다였던 독일 남부의 스산한 겨울을 버티려면 집을 따뜻하게 데워주고,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오븐 앞에 세워두는 ‘베이킹’이 최고라는 것을
금세 깨달았다.
햇빛이 조금이라도 있기만 하면 막 걷기 시작한 딸아이와 햇살에 광합성 하러 부리나케 외출 준비를 했었지만 변덕스럽고 음산한 독일 날씨에 집에 있는 날들이 많아질 때면 쿠키를 만들고, 머핀을 굽고 하며 선반에서 온갖 냄비를 다 꺼내 소꿉놀이를 하는 딸아이와 주방에서 달콤한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리고 그 경험들은 중국에서 주재원 생활을 할 때도 이어져 더 길고, 더 추운 중국 동북의 겨울을 잘 버티게 해 주었을 뿐 아니라 더 업그레이드된 베이킹의 세계로 나를 이끌었다고나 할까? ^^
날이 춥고, 시간은 많고, 삼시 세끼에 간식까지 챙겨야 할 ‘입’들이 있다면.. 베이킹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조건은 없을 것이다. 슬기로운 집콕 생활중에 집밥 생활, 홈트레이닝, 홈베이킹은 이제 코로나 일상을 건강하게 보내려면 장착해야 할 3종 아이템인 듯! 맛있는 동네 빵집에서 사 먹는 빵처럼 프로페셔널 하진 않아도 하루의 시간을 알차게 보내면서 고소하고 맛있는 결과물로 돌아오는 ‘빵 만들기’는 정말 최고의 선택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최근에는 반죽기계 없이 무 반죽으로 쉬운 발효 빵 만들기 레시피도 많고, 유튜브에도 친절하고 쉽게 가르쳐 주시는 빵 선생님들이 많으셔서 그야말로 ‘‘시간’만 있으면 맛있고, 건강에도 좋은 빵 만들기를 뚝딱해낼 수가 있다. 한때 빵집 언니를 했던 사촌 동생은 부드러운 반죽 덩이를 만지고 있으면 ‘행복감’이 불쑥불쑥 느껴진다고 했다. 이스트와 소금, 그리고 밀가루에 물만 넣고 섞어주고, 발효시키고, 다시 접어주고, 다시 발효시키며 조금씩 부풀어 오르는 부드러운 반죽을 하다 보면 ‘맛있어져라, 맛있어져라 ‘ 절로 주문을 불어넣게 된다. 빵은 기다려주고, 시간을 들여야 하는 발효 과정을 거쳐야 제맛을 내는 빵이 되는데 그 시간을 재촉하지 않고 데이트하듯이 즐겁게 보내면 실패 없는 결과로 보답한다. 그리고 그 마음이 깃든 빵은 정성을 머금고, 착실하게 부풀어 올라 고소하고 촉촉한 빵 맛을 내는 것이고.
하루에 빵 한 덩이씩을 굽다 보니 어느새 세 자릿수를 넘어간 확진자 숫자에도 지치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 젖어들고 있던 우울감에서 벗어나 나만의 시간과 리듬, 그리고 여유를 되찾았다. 질리지 않고, 지치지 말고, 발효와의 데이트를 즐기며 조금 더 다른 베이킹을 시도해 봐야겠다. 어느새 크리스마스가 성큼! 우리 집 오븐이 쉴 새가 없겠다. 다음 주는 크리스마스 쿠키를 만들어야지!!!
#코로나_일상 # 베이킹 # 집빵만들기 # 피할 수 없다면 즐기기 # 오븐베이킹.
*이 글은 주식회사 멘테인에서 서비스하는 <keyping키핑> 모바일앱에 2020년 연재되었던 글을 수정, 편집하여 올리는 것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