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봉수아 Jan 17. 2022

엄마의 육아일기

#기억 #육아 #분실물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나의 사진과 글들..

처음 블로그의 개념이 생겼던 때부터

싸이와 카카오스토리 네이버 블로그에 끄적거렸던

나의 일상들이 그새 10년간 세월을 간직하고 있다.


10년은..

나의 치열한 육아의 역사이고 기록들이다.

언젠가  곳에 묶어두고 책으로 엮어 보관하고 싶은.. 소중사진들과 찰나의 감정들.

그리고 순수하고 치졸한 자기 위안이 담긴 내 고백들이 엉켜있다.


아이들에 대한 사랑, 그러면서 피곤함 묻은 짜증

성숙하지 못하게 드러낸 아이들에 대한 화.

부끄럽지만 그것 또한 나의 일부라 부정할 수도 없는 편린들.


엄마를 잃고 넋이 나간 아빠와 함께

할머니네 집으로 들어갔을 때

주택이었던 할머니네 안방에는 다락이 있었다.

다리를 높게 쳐들어 걸치면 다락 문지방 몸을 기대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갈 수 있었다.

4학년인 내가 구부정하게 몸을 구부려 걸어야 하는 낮은 층고..

엄마의 유품들이 거기 뒹굴고 있었고

 뭘 찾고 싶었는지 모르는 와중에 살구색 두툼한 하드커버의 육아일기를 발견했더랬다.


태어나기 전부터

나를 낳고 첫 돌까지도 넘게 써 내려간 엄마의 일기.

당시에 엄마는 한동안 화장품 가게로 바빴고

그 와중에 할머니의 시집살이로 힘들었으며 그 여파를 때때로 우리에게 엄한 훈육으로 표출했다.

그래서 돌아가시고 남은 가장 가까운 기억은 아프고 짜증이 많던 엄마였는데.. 그렇게 내 기억이 각인될뻔했는데.. 아니었다.


난 태어나기 전부터 별처럼 쏟아지는 사랑과 기대를

받았던 아이였다.

엄마의 다정하고 부드러운 정갈한 필체는

사랑과 흥분으로 꼭꼭 눌려져 써 내려갔고

식구들에게 아기이름 현상금을 걸 만큼 특별했고

수많은 식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세상의 둘도 없는 아이로 쓰여 있었다.


나는 매일 학교에서 돌아와 한동안 그 육아일기를 다락방에서 읽으며

내 기억에서 조금씩 떠나가고 있던 돌아가신 엄마의 사랑을

조금씩 조금씩 채워갔다.


그러나..

그렇게 누가 알면 혼낼까, 뺏을까.. 어린 마음에 감춘 엄마의 유품은  

어이없게 상습 수해지역이었던 동네에 내린 수해로 물과 진흙에 범벅이 되어

도저히 구제가 될 수없었던 살림살이, 옷, 이불들, 책들과 함께 쓰레기가 되어

나도 모르는 새 버려지고 말았다.

그리고 어렸던 나는 그것을 찾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


지금도 아이들에 대한 글을 쓸 때마다

엄마의 육아일기가 종종 떠오른다.

그리고 그립다.

그걸 읽을 때마다 보이지 않는 온기로 나를 감싸는 것만 같던 엄마의 영혼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난 그 행복감에 취해 세상에 나갈 수 있었는데..

충만하게 사랑받았던 아이라는 그 기록들 말이다.


내가 남기는 기록들과 글들이

언젠가 우리 두 보석들에게도 그런 기운이 되길 바란다.

부디.

내 육아일기의 주인공들 (feat. 조카 녀석)

매거진의 이전글 옷 정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