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지 못하는 마음
요즘 나에게 가장 많은 것은 시간.
바이러스가 도는 동안 사람들은 일상의 최소한 만을 허락받았고 대부분 많은 시간들이 원하지 않게 주어졌다.
아이들과 복작거리며 밥 해 먹는 시간은 한 달 정도 지나니 서로 익숙해지고 리듬도 맞춰져서 매식 삼끼를 차리려 바둥바둥거렸을 때보다 수월하달까?
하나만 해 먹거나
각자 먹고 싶은걸 사와 먹거나
나는 운동하고 애들은 먹거나..
이런 다양한 조합이 아이들이 열 댓살이 넘으니 가능해진다.
그러면서 이 참에 '버리기'를 좀 해볼까 싶어 옷장을 열었다.
요즘 유행하는 tv 프로그램처럼 '신박'하기까진 않아도 비움을 느끼고 싶었다.
문제는...고르고 골라도 고작 몇 벌이다.
없어서가 아니다. 못 골라서이다.
비교적 옷을 사면 오래 입고 잘 보관하려 하다 보니 멀쩡한 옷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이건 좀 아깝다, 다시 유행이 찾아왔잖아’
‘조금만 팔뚝살을 빼면..’
‘청바지가 다 같진 않지 디테일이 다르잖아’
하면서 분류에서 다시 원위치로 돌아간다.
반면 남편의 옷장에서 나의 손길은 거침이 없다.
그가 입을 때마다 못마땅했던,
'반드시 다음번 정리엔 버리리라..' 했던 옷들을
획 획 옷장에서 잡아채며 바닥에 던질 때는
후련함마저 느끼며!
낡은 옷의 후들후들한 감촉을 좋아하는 남편은
고등학교 때와 별로 달라지지 않은 체격이라
외투며 스웨터 티셔츠 등 큼직한 옷들이라면 목이 늘어진 것부터 깃이 다 닳아 해진 것 까지 다양하게 구비하고 있다.
신혼 때 내가 사준 옷.
자기 누나가 미국에서 사 보낸 옷
열심히 입고 깨끗하게 내가 빨아 댄 옷들.
이제 50을 맞이한 그의 시간들도
여기에서 지나가고 있다.
결국 오늘 남편의 옷장에선 눈에 띌 만한 공간이 비워졌다. 그의 지난 시간들 만큼은 아니지만.
하지만 내가 솎아낸 내 옷장은
미련의 시간들이 아직 남아있다.
보기엔 시간을 거스른 듯 하지만
결국 시간을 지나온 예전의 옷들이.
그리고 버리지 못하고 고르지 못한 내 마음들이.
#일상 #Covidlife #아이들과 함께 나도 자라기 # 감성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