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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파란 Nov 24. 2017

내 낡고 오래된 기차소리...

이것은 '어떻게'의 문제다

내 심장이 남들과 다른 소리를 낸다는 사실은 몇 년 전부터 익히 알고 있었다. 가끔 엄마를 따라 병원에 갈 때 혈압을 재면 심박수가 꼭 100 이상을 넘어 있었다. 110, 108, 107.... 나는 처음엔 내가 정상인 줄 알았다. 그러다가 헬스클럽에 가서 조금만 운동을 해도 심박수가 130을 훌쩍 넘고 밤에 자려고 누우면 내 심장이 내는 소리가 크게 울리는 것을 알았다. 울리는 소리는 기차소리 같았다. 그것도 낡고 오래된 기차소리. 제대로 가지도 못해서 갑자기 덜커덩, 덜커덩 거리면서 가는 낡은 기차소리 같은 것이 났다. 


이렇게 잠이 들면 깨어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 때도 많았다. 아빠를 닮아 엄살이 심해 조금만 아파도 구구절절 떠들어대던 나는 차마 말할 수 없었다. 가슴속에 낡은 기차소리가 덜커덩거린다고 말하지 못했다. 이 증상은 좋아졌다 나빠졌다를 반복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심박수가 더 빨라지고 온몸에서 땀이 났다. 더운 여름에는 더워서 더 땀이 났고 추운 겨울에는 아무도 땀을 안 흘리는데 나 혼자 땀이 났다.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긴장하고 긴장하면 심박수는 올라가고 땀이 난다. 사실 이런 증상은 정신적인 문제도 있는 것 같다. 특히 내 주위에 남성들이 둘러싸고 있다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그렇다고 남성들에게 어떠한 폭력이나 성적인 피해를 입은 적은 '거의'없다. 몇몇 변태들을 만났었지만 그건 한국에 사는 여성들이라면 대부분 겪었을 피해였다.)


맥을 짚고 한약을 지어먹었다. 폐경기 검사를 하고(나는 부인과 진료를 정기적으로 받아야 하는 사람이다. 폐경이 올 나이는 절대 아니었지만 차라리 폐경이었으면 하고 바랐다. 정말이다.) 갑상선 검사를 해봤다. 다 아니었다. 그러다가 올해 들어 심한 어지러움증과 전신 무력증을 두어 번 느끼면서 그때서야 미뤄두고 있던 병원에 갈 의자가 생겼다. 소파에 앉아 있다가 일어서는데 무시무시한 어지러움증이 찾아왔다. 그 뒤에는 온몸이 옴짝달싹 못하는 무력증이 왔다. 어지러움증 보다 그 느낌이 더 기분이 더러워졌다. 전철을 기다리다가 그대로 뒤로 쓰러진 어느 할아버지도 떠올랐고 얼마 전 갑작스러운 사고로 죽은 배우도 떠올랐다. 


우리 동네에 있는 유일한 종합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다. 간단한 심전도 검사인 줄 알았는데 웬걸, 심장 초음파 검사를 하고 하룻밤 동안 차고 자야 한다고 내 가슴에 기계를 부착하고 팔에는 혈압 검사기를 달아주었다. 다른 건 몰라도 시간이 되면 자동적으로 수축했다가 이완하는 혈압계 때문에 나는 그날 밤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수축할 때 어찌나 세게 압박하던지 벗고 나서 보니 실핏줄들이 다 터져있었다. 


결과는 부정맥이 있고 약을 먹어야 할 정도로 수치가 꽤 높은 편이었다. 별의별 생각까지 다 하고 간 터라 하루에 두 번 약만 먹으라고 해서 의사 손이라도 잡고 싶었다. 부인과 진료를 받으며 장기간 먹었던 약 부작용일 수 있다고 해서 내가 다니는 산부인과 상담도 받아보기로 했다. (부인과 질환이나 약 등을 밝힐 수 없는 것은 상관관계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결국 내 부정맥의 원인은 알 수 없다이다. 증상이 있으니 약을 먹어 증상을 약화시킨다. 이것이 팩트이겠지. 부인과 약 부작용일 수도 있다였지만 내과 의사는 사실, 내 부인과 질환의 이름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가뜩이나 장기 복용에 신경이 쓰였던 것은 사실이니 대학병원의 내 담당 의사를 만나러 가야겠지만 그 의사 역시 무슨 대답을 들려줄지 뻔하다. (한 때 한약과 함께 약을 먹겠다는 나를 엄청 혼냈던 의사였다. 그때 양방과 한방의 날이 선 대립을 알게 되었다. 이번에 한약을 지어먹을 때도 한의사는 양약을 끊으라고 닦달했었다. 니미럴. 니들이 다 해 먹어라. 어쩌라고!!!!)


지금은 약을 먹고 내 낡은 기차소리는 약해졌다. 가끔 자리에 누워 약해진 덜커덩 소리를 듣는데 기분이 묘하다. 결국 지금 시대에 사람이 늙고 죽어가는 것은 자연스럽지 못하게 되었구나 싶어서. 그러니까 어느 한쪽이 아프면 그에 따른 약을 먹고 치료를 받는다. 그런데 그 약이나 치료에 부작용이 생겨서 또 다른 쪽이 아프게 되면 그것을 또 다른 약으로 메꾸고, 또 메꾸고, 또 메꾸다가. 더 이상 메꿀 여력이 없으면 사람은 침대에 누워서 호흡기를 달고 힘들게 숨을 이어가다가 죽는구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두 분 모두 일찍 돌아가셨다. 병원 치료받을 기회가 없어서 일찍 가셨다. 그 죽음은 어려서라 기억나지 않아 아프지 않지만 자연스러웠다. 친할머니는 아흔 살이 넘어서까지 살아계셨지만 눈도 멀고 귀도 멀어서 큰집의 골방을 차지하고 앉아만 있다가 가족들이 집을 비운 틈에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셨다. 마지막 남은 힘을 모아서 최소한의 자신을 지키고자 하셨겠지. 그 죽음은 매우 아팠는데 장례식장에서 뒤돌아서서 서로 욕하고 난무하던 험담들에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다. 그 죽음은 자연스럽지 않았다. 


그러니까 나도 어느새 자연스럽지 않은 죽음으로 향해 치닫고 있구나 생각하면 기분이 묘해진다. 나이가 들면 먹는 약은 늘어난다. 이것은 불변의 진리. 우리 세 식구 모두 약을 먹고 있다. 누구도 아직 죽음을 가까이할 나이도 아니고 건강상태도 당장 오늘내일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죽음이 가까워지면 그 약의 가짓수는 더 늘어나 있겠지. 수명이 늘어나는 것은 행복한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100세 인생이 왜 행복한가. 나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늙고 죽는 연습도 필요할지도 모른다. 죽는 날은 자신이 선택할 수 없다 하더라도 어떻게 늙어갈지 어떻게 죽어갈지의 태도는 자신이 정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인간이 살고 죽는 것에는 '왜'라는 질문은 할 수 없다. 하지만 '어떻게'의 문제는 남는다. 나는 지금부터 내가 '어떻게' 늙고 죽을지 선택해야만 한다. 



♬ BGM : 루시드폴 '폭풍의 언덕'

-온통 비바람 몰아쳐어디도 갈 곳 없게 되면작은 오두막 속으로우리를 가두고 불을 끄자여기 세상은 무너질 듯버드나무 가지만 흔들려무서운 소리 들려폭풍이 다시 몰려오나 봐

(이번 앨범 중 가장 좋아하는 곡이다. 가사도 예술이다. 위로가 된다. 위로가 되는 음악을 많이 들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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