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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파란 Mar 10. 2018

결혼식장으로 가는 길.

엄마 친구의 딸 결혼식에 가게 되면서...

경조사를 챙기는 편이 아니다. 그것이 장례식이든 결혼식이든 마찬가지다. '식'이란 형식이고 남에게 보이는 과시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것이 장례식이든 결혼식이든 모든 '식'이 끝난 후에는 '돈'이 얼마나 들어왔는지 셈을 하고 온 사람과 오지 않은 사람으로 나뉘어 분리될 뿐이다. 나는 결혼을 하지 않을 작정이지만 먼 훗날 혹여라도 누군가와 함께 사는 일이 생긴다고 해도 서로에게 번거로운 '식'을 치를 일은 없을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세상을 떠나는 날도 먼지처럼 사라지고 싶다. 그것이 불가능 하니 요즘은 내 죽음에 대한 절차를 어떻게 하면 간단하게 줄일 수 있을까를 생각해본다. 


장례식은 갈 일이 앞으로 많아지겠지만 결혼식은 서서히 줄어들었다. 어느 순간부터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는다. 친하다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서너 명의 친구들은 이미 결혼했고 회사에서 단체로 쭉 뛰어가야 하는 결혼식이 아니면 그 외 모든 결혼'식'엔 참석하지 않는다. (그나마도 회사를 그만뒀으니 갈 일이 더 없다.) 물론 나의 관계성이 아주 협소해서 청첩장 들어올 일도 없다. 그나마 띄엄띄엄 교회 동생들 결혼한다고 청첩장 돌리던 것도 모두 안 갔다. 그중에 직접 청첩장을 돌린 사람들에게만 따로 성의 표시만 했을 뿐이다. 


내가 결혼식을 싫어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결혼식장 때문이다. 웨딩홀이라 불리는 작고 협소하며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이는 공간에서 시간대별로 치러지는 결혼식이 끔찍하게 싫다. 일 년에 한 번이라도 볼까 말까 한 사람들을 만나서 반가운 척 호들갑을 떨며 인사를 하고 하나도 궁금해하지 않는 안부를 묻고 전혀 지키지 못할 수많은 약속들이 오고 가는 그곳이 싫다. 더 끔찍한 건 어려서 몇 번 보고 보지 않고 지내던 먼 친척들이라도 만날라치면 '니 나이가 몇이니?'부터 시작해서 '회사는 어디 다녀?' '남자 친구는?' '결혼해야지... 왜 결혼을 안 해' 등 등의 헛소리들을 다 들어줘야 한다. 그렇다고 그런 이야기들 빼고는 또 딱히 할 말들도 없는 가족이란 울타리로 묶여있긴 하지만 전혀 가족 같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다. 


나는 그런 불편하고 애매한 자리에 끼워 맞춰 찌그러져 웃고 있는 것이 싫다. 거의 모든 결혼식이 그렇다. 거의 모든 잔치들이 그렇다. 돌잔치 또한 마찬가지다. 이젠 세상이 좋아져서 아이들이 돌잔치 전에 죽을 일은 없다. 무사히 잘 자라는 건 이미 부모들 SNS를 통해 다 보게 되어 있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내가 무슨 사회성 결핍 인간 같은데 어느 정도는 맞다. 내 사촌 동생 중에는 때마다 오지랖 넓게 꼬박꼬박 잘 챙기는 동생도 있다. 명절 때마다 무슨 날마다 문자로 '언니~' 하면서 보내온다. 솔직히 말해서 일 년에 한 번도 볼 일이 없는 그 동생한테 언니 소리 듣는 것도 어색하다. 심지어 마지막으로 본 것도 큰삼촌 돌아가셨을 때였다. 


사설이 무척이나 길었는데 왜냐면 그런 내가 심지어 엄마 친구의 딸내미 결혼식에 갔기 때문이다. 엄마 친구는 네 명의 자녀 중에서 두 명을 결혼시키고 올해 안에 나머지 두 명을 3월, 8월에 보내게 되었다. 첫째 결혼식에 가지 못했는데 엄마 친구는 삐쳐서 연락도 하지 않았단다. 어른들한테 자식 결혼이란 어떤 의미일까. 결혼을 포기할 내 나이가 되어서도 '엄마, 나 만약에 결혼을 하게 되면 식은 안 올릴 거야...'라고 하면 '결혼식을 왜 안 해? 해야지!'라는 걸 보면 어른들한테 자식의 결혼'식'이란 사회적 관계에서 중요한 문제임에 분명하다. 


지난번 둘째 결혼식에 가서도 혼자 밥을 급하게 먹고 왔다는 엄마가 또 짠해서 이번에는 내가 뷔페 파트너로 따라가기로 했다. 우습지만 사실이다. 엄마 고향 친구인데 다른 고향 친구들하고는 등을 지고 지내고 엄마하고만 연락하니 엄마 혼자 가게 된 것이다. 가지 말라고 해도 또 그러는 게 아니라며 '할 도리' 운운하는 엄마한테 두 손 들고 결국 따라나섰다. 이럴 때 보면 정말 옛날 사람 같다. 할 도리가 따로 있나. 그냥 내 맘 편한대로 살면 안 되나. 심지어 결혼식장도 오리역이다. 오리꽥꽥도 아니고 오리역이라니... 우리 집에서 무려 편도 2시간이나 떨어져 있는 곳이다. 왕복 4시간이 말이나 되는 거리인가? 가서 밥 먹고 나오는 건 고작 1시간이다. 나는 엄마 친구 딸내미의 결혼에는 전혀 관심도 없다. 단지 엄마 혼자 밥 먹는 게 걸려서 따라나섰다. 


그렇게 해서 정말이지 오랜만에 발을 들여놓은 웨딩홀은 여전히 헬이었다. 그 좁아터진 복도에 무려 4 커플이 동시에 결혼식을 올리고 있었다. 로비에는 사람들로 미어터지고 돈봉투를 내밀면 식권을 준다. 신랑 신부 측 가족과 친한 친구들 빼고는 대부분 결혼식도 안 보고 뷔페 먹으러 올라온다. 뷔페 먹으면서 홀 안에 켜진 스크린으로 결혼식 생중계를 볼 수도 있다. 화질이 좋지 못한 화면으로 결혼식을 보며 뷔페를 세 접시쯤 가져다 먹었다. 신랑 신부와 알지 못하는 나만 열심히 결혼식을 봤다. 아직 이십 대에 결혼하는 신랑 신부의 축하 공연은 클럽에 온 것처럼 친구들이 나와 신나게 춤을 추고 있다. 나중에는 신랑이 턱시도를 입은 채 친구들과 합동 공연을 한다.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들 왁자지껄 자기들 얘기하느라 정작 결혼식에는 관심도 없다. 


옆에 앉은 아저씨들은 서로 자식들 결혼에 대해 떠들고 있다. "저기, 가만있자... 둘째가 갔나?" "둘째는 저번에 갔지.. 속이 다 시원해. 허허.." "그니까... 얼마나 좋아. 그래" 


"엄마... 결혼식에 와서 정작 결혼식 보는 사람은 별로 없네" "요즘엔 다 그래, 일찍 와서 인사만 하고 다들 밥 먹으러 가" 


엄마는 그날 뷔페를 먹다가 포크를 씹어서 앞니가 부서졌다. 네 명이나 되는 자녀 모두를 결혼시키는 고향 친구가 부러워서 인지 결혼식을 왜 하는지 모르겠다는 내가 속이 터져서인지 암튼 포크를 앙 하고 물었다가 이가 다 부서졌다. 나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결혼식장 문화에 대해 생각하며 다시 2시간을 걸려서 집에 왔다. 오는 길에 엄마와 디카페인 숏 사이즈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나는 만약 결혼을 하게 된다면 식을 올리지 않고 혼인 신고만 하고 알릴 사람들에게만 문자로 알리겠다고 했다. 엄마는 이해할 수 없는 짐승을 바라보듯 날 보며 쓴 커피를 넘겼다. 물론 나는 해맑게 한 마디 덧붙였다. "걱정 마... 내가 결혼을 할 일이 없어"




♬BGM : the be good tanyas 'waiting around to die'

넷플릭스의 브레이킹 배드에서 나오던 곡이다. 글과는 전혀 다른 소리지만, 이 시리즈 안 본 사람 꼭 보시라. 정말 웃다가 울다가 하면서 뒤늦게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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