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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파란 Jun 06. 2017

어쩌면, 불안함에 대하여

사람은 한 개씩 우물을 가지고 산다

사춘기 시절에 알아듣지도 못할 시집을 읽고 다니며 (말은 바른대로 하자. 읽은 게 아니라 갖고 다니며) 한 가지 일에 심취한 적이 있었다. 아파트 5층에 살았던 때였는데 아래를 향해 침을 뱉는 일이었다. 고약하게도 누군가 지나다닐 때마다 했던 일이었다. 내 침이 사람 머리 위에 맞는 일에 집중을 했던 것이다. 과연 5층 높이에서 떨어지는 침 한 줄기가 누군가의 머리통에 맞는 일이 일어날 확률이 얼마나 될지, 침을 뱉을 때마다 발바닥이 간지러울 정도로 짜릿했다. 짜릿해서 계속했었는지 계속하니 짜릿해졌는지 모르겠다. 그 짓은 한동안 계속되었고 침을 뱉는 동안 내내 내가 이 높이에서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를 생각했었던 것 같다. 침은 고작 사람 머리 위에 맞는 것이 다겠지만 사람이 5층 높이에서 떨어지면 팔다리가 부러지고 머리통이 깨질 수 있을까. 


하지만 내 침은 사람 머리 위에 맞았던 적이 없었고 그때 가지고 다녔던 시집들은 다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고 나는 더 이상 시를 읽지 않는다. 물론 지금은 12층 높이의 아파트에 살지만 베란다 위에서 내가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 따위를 생각하지는 않는다. 


대신 핸드폰 액정을 한참 들여다본 후 불을 끄고 누우면 눈에 어리는 빛의 잔상 속으로 시도 때도 없이 불안한 기운들이 엄습해온다. 어둠 속에 잡아 먹혀들듯이 오만가지 생각이 나를 휘감아 올 때면 차라리 침을 뱉던 그 시절이 그립기까지 하다. 인간의 유전자에는 어쩌면 '미래의 생존본능'에 대한 불안함이 새겨져 있을지도 모른다. 그게 동물하고 다른 점일 수도 있겠다. 동물에게 '내일'에 대한 개념이 있을까? 동물에겐 그저 '오늘'만 있다. 오늘 하루 배가 고프니 잡아먹고 잡아먹히며, 오늘 하루 살아도 내일은 죽을 수도 있다. 인간은 왜 오늘을 살지 못하고 내일을 살게 하고 어제를 후회하게 할까. 어려서는 그저 어둠이 무서웠는데 커서는 어둠 속에 숨어있는 것들이 무섭다.



사람들에겐 저마다 한 개씩의 우물을 품고 산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어떤 사람은 우물이 얕고 어떤 사람은 우물이 매우 깊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거라고 말이다. 이제 메말라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가끔 어떤 밤은 견디기 힘든 밤이 있다. 한 글자도 쓰기 힘든데 한 글자라도 써야 마음이 나아지는 밤. 




♬BGM : 언니네 이발관 "홀로 있는 사람들" 앨범

언니네 이발관 마지막 앨범을 계속해서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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