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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파란 May 17. 2017

몸은 왜 이리 쓸데없이 정직한가.

캡슐 푸드가 나오 주길

그날이 그날 같은 날들이 이어지고 있지만 사실 그날이 그날이진 않다. 영화 '사랑의 블랙홀'도 아니고 매일이 한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진 않다. 친구도 만났고 전시회도 다녀왔고 시사회에 초대도 받아 다녀왔다. 미세먼지가 옅어져 조금은 숨쉬기 편해졌고 날씨는 갈수록 더워지고 있다. 5월엔 건강검진을 받았고 갑상선 검사도 받았다.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갑상선에는 오른쪽에 0.1cm의 혹이 있는 것 말고는 이상이 없었다. 혹은 1년에 한 번씩 추적검사만 진행하자고 했다. 처치하기엔 너무 작다고 했다. 왜, 너무 어린 치어들은 방생하는 것처럼. 혹도 너무 작으면 방생하나 부다. 오히려 엉뚱한 곳에서 문제들은 튀어나왔는데 고혈압과 고지혈증. 두둥.


고혈압은 집안 내력이다. 이미 엄마, 아빠, 동생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 약을 먹고 있다. 나는 아직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고혈압 전 단계다. 일테면 간당간당 걸리는 치수다. 고지혈증은 전혀 예상 밖의 결과였는데 따지고 보면 예상했던 일이었다. 외면하고 있었을 뿐. 몸은 덩실덩실 10킬로그램이 부풀어 올랐고 복부가 팽창했는데 찹쌀떡 같은 질감에 매번 소파에 앉아 말랑말랑 내 뱃살 만져보라며 엄마와 동생에게 쥐어주곤 했던 것이다. 내 몸무게의 변화를 5년간의 지옥 같은 출퇴근길 때문이라고 단정 지어 생각했는데 따지고 보면, 힘들어서 먹어서 살찐 게 아니라 난 원래 살찌는 것만 좋아했다. 칼국수, 전, 만두, 수제비, 빵, 떡, 젤리, 커피, 피자, 짠 과자, 아이스크림 등이다. 나이가 먹으니 감당을 못해서 이제 툭툭, 나오는 게지. 이 글을 읽고 있는 10대와 20대 그리고 30대 초반... 곧 기다리시라. 당신의 먹은 만큼 몸은 정직하게 내뱉어 준다. 


의사는 너무 젊은데 벌써부터 고지혈증 약을 먹으면 되겠냐며 나에게 6개월의 시한을 주었다. '밀가루 등의 음식을 끊고 매일 30분 이상 격렬한 운동을 할 것'이라는 처방을 받았다. 젠장. 그걸 실천할 수 있었다면 이렇게 되었겠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직 실행에 못 옮기고 있다. 집안에 있는 각종 과자를 다 먹어치우느라. 돈 주고 샀는데 버릴 수는 없잖는가. 이걸 다 먹어서 없애버리려면 당분간 계속 먹어야지. 생각보다 밀가루 끊기가 죽기보다 힘들다. 뭐, 커피 끊는 건 아예 생각도 안 한다. 아침엔 라떼, 저녁엔 아메리카노. 딱 두 잔이 내 하루를 살린다. 커피를 끊으면 나는 아마 도벽이 생기거나 몸에 타투를 하거나 피어싱을 할지도 모른다. 사람은 한 가지 정도는 집착할 것이 필요하다. 집착과 중독은 나의 힘. 


내가 전에부터 누누이 하는 말이지만. 이런 몸의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이 세상의 모든 음식들이 다 없어지고 캡슐 푸드가 나와야 한다. 몸의 밸런스와 영양을 맞춰주는 먹으면 포만감이 느껴지는 캡슐 푸드.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나는 지금 배가 고프다. 



♬BGM : 라흐마니노프 : 보칼리제, Op.34. 14 (클래식을 들어도 식욕은 가시지 않는다)


*데일리 레코드 글에 BGM을 쓰는 것은 내가 그 음악들을 들으며 글을 쓰기 때문이다. 극적인 글의 효과를 위해서 원하신다면 BGM을 찾아 들으세요. 전 좋은 음악만 듣습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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