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볼파란 Apr 27. 2017

우리는 슬플 시간이 아주 많다.

우리는 슬퍼해야 한다

한동안 우울감이 심해져서 밤에 잠들기가 쉽지 않고 화장실을 자주 들락거렸다. 머리가 자주 아프고 이렇게 끝도 없는 어두운 터널을 계속 지나갈 것만 같았다. 알고 있다. 이런 우울감을 나는 늘 조금 즐긴다. 모든 것을 기승전우울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 가서 생각지도 못한 허지웅의 책을 사 왔는데 그 책에는 이렇게 쓰여있었다. 


슬픈 게 취미인 자들과 어울리지 말라. 우리는 슬플 시간도 없다.


나는 이 짧은 문장에 굉장히 뜨끔해졌다. 슬픈 게 취미이고 우울해지는 게 취미인 게 바로 나다. 하지만 이 문장 바로 다음 문장엔 시비가 일었다. 우리는 슬플 시간도 없다. 뭐 어쩌라고. 슬플 시간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우울해지고 그럴 시간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알고 있었다. 게으른 나 자신을 우울감으로 감싸 안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은 나였다. 



산책을 시작했다. 회사를 그만두면서 끊어 둔 세 달 짜리 헬스는 한 달이나 제대로 나갔을까. 집에서 멀다는 핑계로 헬스를 접었다. 집 근처에는 유네스코로 지정된 꽤 근사한 장릉이 있다. 아파트 단지 꼭대기에 뒷산으로 이어지는 산책로 입구가 있다. 그 길을 따라 뒷산을 걷다 보면 시청 뒤편에 있는 장릉으로 들어갈 수 있다. 적은 돈의 입장료가 있는데 한 달권을 미리 끊어놓으면 매번 끊을 필요 없이 패스할 수 있다. 장릉의 좋은 점은 셀 수 없다. 우선 자연이 있다. 소나무가 근사하게 서있고 온갖 나무들이 곧고 빽빽하게 서있어서 어디선가 반지의 제왕 요정족들이 튀어나올 것 같다. 봄에는 근사한 꽃길이 피어나고 여름에는 연못에 연잎으로 가득하며 사계절마다 자연은 피고 지며 사람들의 마음을 울려준다. 요즘은  봄꽃이 지며 눈이 부실 정도로 초록빛이 시작되는데 그 색감에 나는 날마다 울고 싶어 진다. 모니터 화면 속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의 팔레트에서는 만나 볼 수 없는 색상의 세계가 펼쳐진다. 


동생은 요 며칠 롤러코스터 같은 직장 생활을 그야말로 롤러코스터를 타며 끝냈다. 내가 내린 결론은 하나였는데 고용인과 피고용인은 영원히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이라는 사실이다. 서로 이해하려 하지 않아야 상처받지 않는다. 가족 같은 회사는 없다. 가'좆'같은 회사만 있을 뿐이다. 서로 다른 언어로 말하는 사람들은 애초부터 서로 이해하려고 들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회사의 모든 회식과 소풍, 워크숍 등을 경멸한다. 서로 다른 언어를 가진 자들이 이해하는 척하는 허울뿐인 단합의 현장이다. 결국 나는, 회사에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뛰쳐나왔던 다짐이 현실 앞에 너무나 쉽게 허물어져 버릴까봐 이렇게 힘든 것 같다. 


동생이 사 온 서브웨이 샌드위치를 씹으며 동생의 운명 같은 만남에 대해 들었다. 그런 것을 운명이라 거창하게 이름 붙이기엔 애매하니 타이밍이라고 해두자. 가끔씩 서로의 타이밍이 맞아떨어질 때가 있다. 어제부로 동생은 회사에 종지부를 찍었고 오늘 면접을 보러 갔다. 기대에 미치지 않은 면접을 끝내고 나왔을 때 담배를 피우고 있던 첫 번째 직장의 대표를 운명처럼 다시 만나게 되었다. 면접을 치른 곳은 하필 첫 번째 직장의 건물이었고 그렇지 않아도 마주치면 어쩌지 했던 것이 그야말로 현실이 된 셈이다. 대표는 반갑게 인사를 하며 동생을 잡았다. 사무실에서 커피를 마시며 동생 보러 다시 나오라고 하더란다. 지금 있는 직원들이 이번 달로 나가게 되었다며. 동생의 직업 특성상 사실 이 시기에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기는 힘들다. 그렇지 않아도 아르바이트라도 해야 하나 싶었는데 그렇게 만나게 된 것이다. 첫 번째 직장을 나올 때 그 직장에서 느꼈던 불만들은 지금까지 다른 직장들을 겪으면서 다 거기서 거기고 심지어 차라리 그곳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단다. 그렇다. 한국에서의 직장 생활이란 다 거기서 거기다. 


동생은 이 극적인 만남을 통해 그렇게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했다. 정규직으로 일하기보다는 바쁜 시기에 아르바이트를 해주기로 한 것이다. "넌 어떻게든 일복은 타고났다"라고 했지만 일복이 있는 동생을 부러워하게 될 줄이야. 하늘에서 일이 떨어져 내린다면 좋겠다. 그렇다면 하고 싶은 일만 골라서 할 수 있겠지. 


역시 터키베이컨아보카도 샌드위치에는 렌치 소스가 어울린다. 


***

BGM : A great big world 'Say something' 

"Say something, i'm giving up on you..."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