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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파란 Oct 17. 2018

오후 세시의 티타임

서로가 서로에게 처음인 역사에 대해서...

엄마와 종종 갖는 오후의 티타임. 엄마가 일을 마치는 오후 3시부터 오후 5시까지 동네 베이커리에 가서 빵과 파이 등과 함께 마시는 커피가 맛있다. 사실 내가 원해서 갖는 시간이다. 엄마는 커피를 즐기지 않고 나도 카페인을 자제해야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야금야금 다시 마시기 시작했다. 맥주도 커피도 마시지 않고, 더 산다고 해서 행복할 거 같지 않았다. 물론 그런 말은 차마 엄마한테 하지 못했다. 때론 내 심장이 톡톡, 하고 울리는 소리가 들린다. 자기 심장 뛰는 소리를 온몸으로 듣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상당히 기분 나쁘다. 그게 현실이다. 내 나름대로 심장이 노크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는데 누워서 내 심장이 내는 소리를 듣다 보면 이 심장이 언젠가는 멈추게 되고 나란 존재는 다시 무(無)로 사라지겠지. 이 심장이 뛸 때까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뭐,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슬픈 이야기는 아니다. 모든 존재는 결국 다시 무(無)로 돌아갈 테니까. 사실 나는 종교가 있는데 무(無)라고 생각하는 건 사후 세계의 일은 지금 현재 내가 육신을 입고 살아가는 이 세계의 일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더 솔직해지자면 나는 아직까지 죽음이 두렵고 막막하다. 두렵고 막막한 기분에 줄 하나 붙잡고 있는 게 나한테는 '믿음'이 되지 않았을까.(뭐, 네 나는 나일롱 신자일지도 몰라요.)


오후의 티타임은 즐겁다. 하지만 항상 즐거운 건 아니다. 엄마와 대화를 하는 시간은 즐겁기도 하고 당혹스럽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한다. 엄마는 내가 엄마한테 상처받은 만큼 나한테 상처받았다. 그 사실은 나한테 충격이었다. 나만 상처받고 결핍되어 자라왔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이기적인 생각이었다. 스물 세 살에 '엄마'가 된 우리 엄마는 예민하고 이기적이고 융통성 없고 고집스러운 나를 키우며 상처받았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어린 시절의 '나'와 엄마가 기억하고 있는 어린 시절의 '나'의 모습은 서로 다르다. 내 기억은 많이 왜곡되고 휘어져있다. 나한테 유리한 쪽으로. 오늘의 티타임에 파이와 커피를 마시며 엄마는 뜬금없이 내 어린 시절을 끄집어냈다.


"3학년 때인가 4학년 때, 학교에 갔다 왔더니 니가 집에 와서 그러더라. 짝꿍이 니 엄마 뚱뚱하다고 했다고, 앞으로 학교 오지 말라고... 그게 어찌나 충격이던지.. 그 후로 니 학교에 안 갔지. 운동회 때도 안 갔어. 니 아빠가 왜 안 가냐고.. 결국 니 아빠 혼자 갔었지."


맙소사! 기억이 전혀 없다. 운동회 때 엄마가 없었다는 것도 내가 엄마한테 뚱뚱하다고 오지 말라고 했다는 것도 내 머릿속에는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우겨봤지만 아마 엄마의 기억이 맞겠지. 그때 엄마는 고작 서른 초반의 나이였을 텐데 어린 딸한테 그런 말을 들었다면 어떤 마음이었을까 생각하니 얼굴을 들어 엄마 눈을 마주치기 힘들었다. 나는 어린 시절 우리 부모님을, 가난한 우리 집을 부끄러워했다. 아니었다고 아니라고 우겨보고 싶지만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그땐 그랬다. 그러니 아마 어린 나는 엄마한테 그런 소리도 충분히 했을 거다.


그 기억이 환갑이 지난 엄마 마음 깊이 남아있다는 사실에 먹먹해졌다. "그땐 어렸잖아.."라고 해봤자, "넌 항상 그랬어.. 못됐었어.. 날 엄청 힘들게 했지."라고 말하는 엄마 앞에는 그만 말문이 컥 막혀버리고 만다. 나만 힘들게 자란 줄 알았더니 우리 엄마는 나 키우느라 배는 더 힘들었던 거다. 늘 동생보다 나 키우는 게 너무 힘들었다고 나에 비하면 동생은 먹고 자고 거저 자란 거라고 할 때마다 나는 심통이 났다. 아니, 내가 일부러 그렇게 자란 것도 아니고 그렇게 태어난 걸. 뭐 어쩌라고!라는 심정이 된다고 할까. 나는 아기였을 때부터 병치레가 많고 손이 많이 가던 존재였다. 병원을 안방 드나들듯 하더니 꽉 막힌 성격으로 고집도 장난 아니었다. 동생과 잘못해서 매를 맞으면 눈치 빠른 동생은 잘못했다고 싹싹 빌어 매를 피하고 나는 오줌을 그 자리에 쌀 지언정 입을 꾹 다물고 매를 다 맞았다. 그러니 엄마와 많이 부딪혔다. 어린 엄마는 그런 내가 얼마나 버거웠을까.


엄마는 엄마가 처음이었고 나는 인생이 처음이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처음이어서 우리는 지금까지 서로에게 많은 상처를 받고 남겼다. 그래도 나는 이 오후의 티타임을 좋아한다. 엄마와 띄엄띄엄 맞춰보는 기억들이 서로 달라서 당황스럽더라도 함께 공유한 시간은 역사가 된다. 그 역사가 때론 상처로 남고 아픔으로 남는다고 해서 박하사탕의 김영호처럼 '나 다시 돌아갈래!!' 외치고 싶진 않다. 그 자체가 우리의 역사니까.


다음의 티타임을 기다리며.... 언젠가는 우리 안 여사의 인생 역사를 기록에 남길 날이 있을까? 할 수 있다면 그러고 싶다.




♬BGM : Mike Perry - The Ocean (ft. Shy Martin)

요즘엔 음악을 잘 듣지 않는다. 오고가는 외출에 사운드클라우드앱을 열어서 기존에 설정해놨던 곡들을 무한 반복하는데 그 중에 한 곡이다. 마틴 개릭스와 트로이 시반의 'There For You'와 함께 가장 많이 듣는 곡이다. 음악도 패스트푸드가 되어 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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