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볼파란 Sep 01. 2018

병원에서

대기 시간을 보내는 방법

병원이다. 대기 시간이다. 대(기) 배우 이시언만 대기하는 게 아니다. 병원에 가면 대기하는 게 일이다. 저마다 대기하는 방법이 있겠지.


담배 피우는 사람들은 밖에서 담배를 피우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주위를 산책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병원 내 카페나 식당에 죽치고 앉아 있기도 하고 마음이 급한 사람들은 병원 복도에 앉아 수시로 간호사한테 시간을 체크하기도 한다.


나는 이미 한 시간 반을 대기했고 앞으로 삼십 분을 더 기다려야 검사 결과가 나온다. 이젠 에어컨 바람이 춥게 느껴지는 카페에 앉아 책도 읽고 이 글도 쓴다. 아이스 라떼와 모카번도 빈 속에 먹고 마셨다. 둘 다 내 몸에 좋은 것들은 아닌데 어쩔 수 없다. 마음이 상당히 조급한데 검사 결과 때문이 아니라 어제 도착한 택배 때문이다.


집을 비운 사이 온 우체국 택배는 경비실에도 집 앞에도 없었는데 톡으로 온 배달 메시지엔 본인 수령 배달완료로 되어 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 기사님께 전화를 드렸지만 통화가 안된다. 지금도 안 받는다. 내 택배는 어디로 갔는지. 택배에 신경이 쓰이고 통화가 안되어 답답하고 조급하니 검사 결과는 아주 작은 것이 되어버렸다.


이 방법도 좋은 것 같다. 큰 일 앞에 신경 쓰이는 작은 일들을 만드는 것이다. 신경 분산법. 물론 헛소리다.


동생의 생일이라 결과가 나오는 대로 케이크를 사러 갈 참이다. 케이크는 늘 그렇듯 동생이 좋아하는 생크림 케이크이다. 그나저나 시간이 너무 안 간다. 난 원래 대기 시간 잘 보내는 사람인데...


택배 기사님, 전화 좀 받아주세요.


*후기 1

검사 결과는 삼십 분이 아니라 이후로 한 시간을 더 기다려서 들었고, 배고픔에 지친 동생은 본인이 케이크를 사서 날 데리러 왔다.


택배는 기사님과 통화가 안되어 분실신고를 했는데 알고 보니 토요일은 당직 기사들만 빼곤 일하는 날이 아니라 통화가 안된단다. 혹시나 해서 다시 경비실로 내려가 봤지만 역시나 없다. 월요일에나 담당 기사와 연락해서 전화 주겠단다. 고마운 분이 보내주신 선물이라 내용물이 뭔지도 모르는데 이러다가 내 택배는 공중분해로 사라질 것 같아 얼굴도 모르는 그분께 미안하다.


이래저래 되는 것이 없는 날이 되었다. 월요일에 택배에 관한 후기는 계속된다.


*후기 2

택배는 결국 일요일 아침에 돌아왔다. 분실 신고를 하고 다시 한번 경비실에 내려갔다 왔는데 없어서 반포기한 상태였는데.. 일요일 문을 여니 그 앞에 놓여 있었다. 이로써 알 수 있는 두 가지 가설! 하나는 우리 동 경비 아저씨가 뒤늦게 발견해서 갖다 놓은 것. 다른 하나는 우체국 택배 기사님이 실수로 다른 동에 가져다 놓은 걸 그곳 처소 경비아저씨가 가져다 놓은 것.


그리고 오늘 우체국 민원 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기사님께 확인한 결과, 우리 동 경비 처소가 문이 잠겨져 있어 통화를 했는데 경비실 앞 주머니에 놓고 가라고 했다는 것!! 그렇다면 결론은 우체국 택배 기사님은 제대로 배달했고 경비 아저씨가 문 앞 주머니를 미처 놓치고 있다가 뒤늦게 발견하고 가져다 놓았다는 것이다. 


그래도 무사히 택배가 도착해서 다행이다. 얼굴도 본 적 없는 분께 받은 선물은 색깔도 마음에 드는 코바늘로 만든 작은 핸드백이었다. 꺄울. >ㅡ<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돌 좋아합니다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