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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파란 Jun 13. 2019

그래, 요즘 통장에 돈이 있는 걸 아는 거지. 석류즙에 이어 살빼겠다고 닭가슴살부터 주문했다. 이것뿐이랴.


직장인 시절엔 월급은 그저 통장을 스쳐 지나가는 것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그 와중에 쌓이는 것도 있었다. 적금을 들 수 있었고 일 년이 지나면 뿌듯해지곤 했다. 그런데 프리랜서 생활을 한 이후로는 적금을 들 수가 없다. 뭐 프리랜서도 프리랜서 나름이라 급여 수준 이상의 돈이 달마다 꼬박꼬박 들어오는 프리랜서라면야 적금 할아버지도 들 수 있겠지만 나같이 풍전등화 같은 이들은 하루 먹고 하루 살기 급급하다. 적금은 고사하고 부가세, 종소세 낼 때면 심장이 벌렁거리고 통장의 잔금을 세며 대출금과 생활비 계산하기 버겁다.


내 통장 잔고는 늘 달랑거렸는데 얼마 전에 수업도 시작했고 또 생각지도 못한 돈도 들어왔다. 갑자기 풍족해진 통장 잔고가 이렇게 사람 마음을 든든하게 만들어 준다는 걸 직장 다닐 때는 몰랐다. 웃프다. 그래서 그런지 제법 대담한 소비 패턴을 보이고 있는 요즘이다. 뭐, 돈이 있든 없든 일주일에 두세 번은 꼬박꼬박 스벅에 눌어붙어 있던 잉여인간이지만 그래도 그 외 욕구불만 쇼핑은 자제했건만 완전 폭발했다.


뮤지컬 두 편을 예매했고 U2 공연도 질렀다. 나란 사람은 종종 전시회 건 공연이건 영화건 봐줘야 한다. 그나마 공연은 정말 많이 자제했는데 얼마 안 있으면 생일이라는 보상 심리가 컸다. 그래, 나한테 내가 선물해주자. 공연을 보고 오렴. 호박마차와 유리구두를 준비해 주마. 뭐 이런 요정이 내 마음속에 사나 보다. 문제는 그런 시간은 너무 순식간에 지나가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나는 언제나 낡은 옷과 맨발로 호박 덩어리 하나만 안고 온다는 거다. 백마 탄 왕자 같은 것도 없어서 이 꿈의 끝은 언제나 슬프다.


뮤지컬이야 국내 창작극이라 그래도 저렴한 편인데 U2는 '피땀눈물'을 흘리며 클릭해야 했다. 그나마 남아있던 좌석은 저렴한 지정석인데 이 뒷자리 좌석 값도 만만치가 않다. 그래 무려 U2잖아. 지금 안 보면 언제 보겠어. 이 아저씨들 이젠 못 올 거야. 가장 좋아하는 곡인 'with or without you'을 오랜만에 듣는다. 크. 이 곡을 내 눈앞에서 듣는 건가. 공연 셋 리스트에 있어주면 좋겠다.


아, 몰라. 돈은 이렇게 쓰는 거지.
이 돈 안 써도 어차피 부자는 못 될 거잖아.



미리 느껴보는 공연 현장

이 영상은 정말 공연 현장에 와 있는 것 같다. 보노 앞모습은 안 보이지만 미리 느껴보기엔 충분해. 보노 아저씨 젊어서 그렇게 멋졌는데 여전하다. 올해 12월에 난 U2랑 같이 있을 거야. 우하하하하. 그때까지 열심히 잘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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