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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파란 Aug 31. 2019

점심시간, 우리 동네 등기소 앞에서 한 무리의 직장인들이 쏟아져 나왔다. 무슨 연유에서인지 직장 상사로 보이는 이가 화가 났다. 벌건 대낮에 사람이 있는데서 아무렇지도 않게 부하 직원들을 향해 욕을 쏟아부었다. 그것도 그냥 욕이 아닌 쌍욕이었다. 욕은 특히 한 사람을 향해 집중되었는데 주위에 있는 다른 직원들도 욕을 듣고 있어야 하는 그 직원도 모두가 바닥만 쳐다보고 있을 뿐 어느 누구 하나 부당함을 호소하지도 따져 묻지도 않았다. 그 욕을 다 듣고서야 밥을 먹으러 갈 텐데... 그건 무슨 곤욕인가 말이다.


지나가던 길에 우연히 본 그 사건은 굉장히 충격적으로 남아있다. 왜냐면 속사포 랩처럼 씨발로 시작하던 그 욕을 하던 이는 50대가 훌쩍 넘은 점잖은 공무원이었고 욕을 하던 이보다 더 충격적이었던 건 그 욕을 듣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무력감이 그대로 느껴졌다. 물론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전화기를 때려 부술 듯이 내려치는 사람도 서류더미를 벽에 내리치던 이도 지들끼리 멱살잡이 하던 이도 있었지만 그건 자기들끼리 이해관계가 얽힌 문제였다. 어떻게 하면 매일 얼굴 볼 사람들에게 그런 욕을 일방적으로 할 수가 있을까?


얼마 전,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탈 때였다. 아래층이 이사를 가는지 이삿짐센터 사람들이 박스를 들고 탔다. 두 사람이었는데 한 사람은 타고 한 사람은 미처 타지 못하고 문이 닫혔다. 문제는 엘리베이터 안에 탄 이 남자가 여자밖에 없는 그 엘리베이터 안에서 8층까지 올라가는 동안 쌍욕을 해댔다는 거다. 말인즉 등신같이 빠릿빠릿하게 타지 못하고 엘리베이터를 놓친 같이 일하는 사람에게 하는 욕이었지만 듣고 있는 나는 덩달아 기분이 나빠지고 위협감마저 느꼈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같이 일하는 사람을 향하는 씨발 소리는 저런 욕을 듣고서 같이 일해야 하는 사람은 대체 얼마나 더러운 기분일까 생각하게 했다.


나는 그렇다고 욕을 하지 않냐? 그렇지 않다. 심지어 잘한다. 하지만 되도록 하지 않으려고 한다. 욕이란 작고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자신을 보여주기 싫어서 먼저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 거리며 무는 행동에 불과하다. 굉장히 비겁하고 불쌍한 짓이다. 내가 욕이 나올 때도 대부분은 그랬었다. 그래서 화를 내고 욕을 하고 나서 남는 것은 후회와 자괴감뿐이었다. 물론 남이 욕을 할 때도 그렇다. 언젠가 출근길 만원 지하철 안에서 만난 생전 처음 본 아저씨는 사람이 너무 많아 조금 밀었다고 가장 만만한 나한테 눈을 부라리며 쌍욕을 했다. 같이 욕하고 싸우는 대신 나는 그를 측은해하기로 했다. 아, 불쌍하구나. 얼마나 불쌍하면 이 아침에 저렇게 핏대를 세우며 욕을 해서 자신의 기분도 모자라 남의 기분까지 망치려 드는 것일까.


하물며 한 번 보고 말 것도 아닌 직장 생활을 하며 매일 보는 이들을 향해 욕을 하는 경우는 가장 비겁하고 악한 짓이다. 특히 자신의 지위나 계급을 이용해서 욕을 권력처럼 사용하는 이들은 말할 것도 없다. 그건 가정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매일 보는 사이일수록 매너와 예의를 지켜야 한다. 가족한테 항상 후회하는 것은 그 매너와 예의를 지키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직장은 전혀 다른 문제다. 매일 보지만 혈육관계로 맺어져 무슨 짓을 해도 용서해 줄 것 같은 가족도 아니다. 그러니 얼마나 예의와 매너가 있어야 할 관계란 말인가? 싫든 좋든 매일같이 얼굴을 보면서 일해야 하는데 무슨 배짱으로 입에 걸레를 물고 욕을 한단 말인가?!! 자신의 비겁함과 무식함을 그렇게 잘 드러내는 방법도 없다.


나는 나이와 성별을 초월해서 욕을 하는 사람이 싫다. 욕하는 모습을 볼 때면 그 욕이 하나하나 입으로 튀어나오는 오물 같아 보인다. 오물이 되지 않으려면 욕이란 모름지기 필요한 곳에 해줘야 하는데.... 정작 해야할 사람에게 향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보다 약하다고 생각하는 존재한테 향할 때가 많다. 그러니 욕에 대한 애티튜드를 지키지 못할바에야 입다물고 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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