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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파란 Sep 09. 2019

태풍

태풍의 핵 같은 일주일이었다. 동생 생일날 가족끼리 사달이 나서 말없이 일주일을 보냈다. 각자의 방에서 각자의 삶을 살았다. 거실은 고요해졌고 정말 필요한 말들만 했다. 고요해진 삶은 불편하지 않았다. 가족 관계도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벌써 오래전에 깨달았지만 가까운 관계라는 이유만으로 매번 실수를 한다. 영원한 관계란 없다. 노력하지 않는 관계는 언제든 끊어질 수 있다. 그게 가족이라 해도 말이다.


태풍 링링이 야금야금 올라오고 있었다. 원래도 자연에 두려움을 많이 느끼지만 작년 부산 여행 때 콩레이를 만난 후 태풍이라면 더 무섭다. 난 재난을 겪어 본 적이 없다.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일엔 누구나 두려움과 걱정이 앞선다. 부산에 있을 때 호텔 룸에 가득 찼던 태풍 바람 소리에 이른 아침부터 호텔을 탈출했는데 나중에 부산 살던 동생한테 얘기하니 부산에 살면 그 정도의 태풍엔 그냥 오는가 보다 한단다. 많이 겪어보면 무뎌질 수 있는가?


금요일 저녁에 창틀 곳곳에 휴지심을 끼워 넣었다. 근처에 다른 아파트 단지가 없고 뒤에 산이 있고 우리 집은 12층이나 되어서 평소에도 바람이 지나가면 유난히 바람 소리가 거센 곳이었다. 내방 베란다 창틀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에 깬 적도 있었다. 아침부터 바람이 거셌다. 집안에 윙윙 거리는 바람소리가 가득 찼다. 밖에 있는 실외기를 통해 에어컨에서도 요란한 바람소리가 났다. 산에 있는 나무들이 미친 듯이 춤을 춘다. 12층까지 뭐가 막 날아다닌다. 정오를 지나 오후 3시쯤 되니 바람소리는 끼이이익 거리는 비명소리로 바뀌고 현관문과 화장실 천정 문까지 들썩인다. 헐.... 집안이 바람에 터져나가는 소리로 가득하다. 아무것도 못하고 멍하니 TV 속보만 바라보고 있었다.


12층 아래를 내려다보니 나무들은 꺾일 듯 꺾이지 않고 버텨내고 있다. 이 와중에 텃밭에 누군가 나와서 비옷을 입고 풀을 뽑고 있다. 할머니 같다. 아이고. 두려움의 크기는 모두 같지 않다는 게 신기하다. 누군가는 벌벌 떨고 누군가는 아무렇지도 않다. 누군가는 이 날씨에도 텃밭을 가꾸는 게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같은 하늘 아래 같은 공간에 있어도 각자의 프레임안에 살고 있다. 그래서 각자의 프레임안에서 볼 수 있는 것들만 집중해서 본다. 어떤 이에겐 중요한 일이 어떤 이에겐 그저 스쳐 보내는 풍경에 불과하다.


3시를 넘기니 바람 소리에 적응했다. 아마 이번 태풍 링링을 겪고 부산에 가서 태풍을 만났다면 바람 소리 때문에 그 아침에 택시를 타고 부산역에 도망쳐 가진 않았을 것 같다. 두려움이란 알지 못하는 '미지'에서 온다.


기어코 바람에 102동 9층 거실 창문이 깨졌다고 방송이 나왔다. 위험하니 절대 그 앞으로 다니지 말란다. 우리 집 거실 창문이 깨지지 않은 건 내가 끼워 놓은 휴지심 덕분이라고 말했다. 그런 생색이라니. 그리고 우리 가족은 말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알고 있다. 언제든 다시 태풍의 핵으로 들어갈 수 있다. 지금은 일주일이지만 그게 한 달이 될 수도 있고 일 년이 될 수도 있겠지. 주어진 삶이 자신을 견디면서 사는 거라면 가족이란 서로를 견뎌야 하는 관계가 아닐까.


뭐가 됐든 견뎌야 한다니 우리는 서로에게 얼마나 불쌍하고 가련한 존재인지. 그러니 우리 서로 연민하며 살자.



*Photo by JR Korp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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