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볼파란 Dec 25. 2019

Merry Christmas

올 한 해 많은 일들이 있었다. 나는 여전히 위태로운 길 위에 서있다. 선택했던 일에 후회도 했고 계획하는 일이 불안하기도 하고 출근했던 회사는 하루 만에 날아갔다. 출근 첫날에 왜 나와야 했는지는 이곳에 구구절절 쓰고 싶지 않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하늘에 영광, 땅에는 평화라는 크리스마스다. 한해를 잘 보내고 싶었는데 돌아보면 후회와 불안으로 점철된 나날이었다.  


크리스마스지만  여전히 내게는 여느 날과 다르지 않았다. 찬 바람을 맞으며 한 시간 걸었고 머리 아프게 인터넷 강의를 챙겨 듣고 손이 아프도록 필기도 했다. 나간 김에 일부러 케이크를 사 왔다. 이런 날에는 빵집 한편에 수십 개의 케이크 박스가 쌓여 있다. 공산품으로 만들어 내는 크리스마스 분위기지만 뭐 어떤가. 분위기 내는 데 그만이다. 분위기라도 내지 않으면 크리스마스 인지도 모를 정도니까.  


케이크를 사들고 돌아오는 길에 문득 함박눈이 펑펑 내리던 이브날 밤에 돌던 새벽송이 떠올랐다.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새벽송을 부르고 밤을 새운 후 맞이하던 화이트 크리스마스였다. 이젠 기온이 많이 올라 크리스마스 때 눈이 오는 것도 힘들어졌고 이웃을 찾아가 부르던 새벽송도 사라져 버렸다. 층간소음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된 후로 '민폐'라는 명목 하에 이웃 간의 어떠한 '소음'도 참아주지 못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나는 항상 사라져 가는 모든 것이 어쩐지 안타깝다.


그래도 크리스마스가 없어지진 않을 것이다. 믿음이 있든 없든 모두 각자만의 크리스마스를 만들어 왔고 앞으로도 그럴 테니까. 적어도 대놓고 분위기 낼 수 있는 날이 많지 않으니까. 나는 믿는 사람이니 적어도 잠들기 전에 기도해야겠다.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있도록... 그리고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이 또는 세상의 모든 착한 사람들이 따뜻해지도록.


Merry Christmas-


분위기 내는데 그만인 리베라 합창단 캐롤 O Holy Night
분위기 내는데 그만인 리베라 합창단 캐롤 Carol of the Bells


매거진의 이전글 가을 단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