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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파란 Oct 27. 2019

가을 단상

머리가 길어지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머리카락.

집에서 단발로 자르다가 그마저도 내버려 두고 있다. 이제 어깨를 제법 넘어서고 있다. 이 머리를 어떻게 할지 아직 생각하지 못했다. 이거 말고도 지금 나한테는 매 순간 선택하고 생각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다. 그러니 머리카락이나 손톱이나 이런 것들은 그냥 좀 내버려 두고 싶다. 내 발톱에는 아직도 몇 달 전 칠한 페디큐어 색상이 얼룩덜룩하게 남아있다. 알게 뭐람.


나는 원래 생리통이 없다. 양도 적은 편이고. 복 받은 것 같지만 몇 년 전만 해도 산부인과 진료를 정기적으로 받았으니 복도 아니다. 언제 다시 생리로 속을 썩일지 알 수 없달까. 그러니 내 자궁도 그렇게 속을 썩였으면 나 좀 내버려 두겠지. 암튼 그래서 그런지 이번 생리는 엄청났다. 생리통 문제가 아니라 얼굴과 가슴, 등 전체에 여드름이 올라왔다. 얼굴은 꽃처럼 여기저기 터지고 등은 거울 보기 싫을 정도로 울긋불긋해졌다. 생리기간과 겹쳐 스트레스가 가장 큰 요소 이리라. 지랄 맞게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온 몸으로 꼭 티를 낸다.


위층이 이사를 왔다. 전에 살던 사람은 혼자 살아서 거의 집에 없는 데다가 조용했기 때문에 이사 가는데 바짓가랑이라도 잡고 싶었다. '제발 가지 마!!!!' 하나님이 내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신 것일까? 이틀에 걸쳐 리모델링 공사를 하고 들어온 위층 사람이 조용하다. 물론 발소리가 쿵쿵거리긴 해도 조용하다. 왜지? 이 사람도 혼자사나? 아파트에 혼자 사는 사람들이 느는 걸까? 아직 얼마 되지 않아서 조금 더 두고 봐야 하겠지만... 가뜩이나 앞집 개가 심하게 우는지라 위층까지 층간소음이면 나같이 예민한 사람은 잠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 앞집 개는 분리불안이 심하다. 나이 든 노견인데 주인아줌마 혼자 키우고 아저씨는 주말부부에다가 아줌마마저 노래방 운영하느라 새벽에 들어온다. 거의 혼자 있는 셈인데, 잘 있다가도 정말 구슬프게 운다. 우는 때는 정해져 있지 않고 낮에도 울고 저녁에도 울고 밤에도 울고 새벽에도 운다. 불쌍한데 새벽에 울면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아줌마, 제발 일찍 좀 들어오세요!!'


서울숲에 다녀왔다. 솔직히 실망했다. 굉장히 기대했는데, 동네 근처 호수공원이 더 좋다. 호수공원은 가깝고 서울숲은 멀다. 거리가 먼 것에 비례해서 기대치가 올라갔는데 그 기대치를 다 채워주지 못한 것이다. 원래 사람은 본전 생각나는 경제적인 존재이다. 그리고 조각상에 쓰레기 버리고 간 사람들... 벌 받을 거예요. 내 한줄평은 서울숲은 사진빨을 참 잘 받는 곳이었다. '너, 사진빨이었구나.. 어플 뭐 쓰니?' 그렇잖아도 함께 간 이모는 사진 찍을 때면 꼭 어플을 쓰려고 했다.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는데 그건 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자신을 사진으로 남기려는 이유는 뭘까? 왜냐면 가려주기 때문이다. 자신이 숨기고 싶은 '진실'들을 말이다. 나이가 들어 주름이 생기고 얼굴에 탄력이 떨어지고 눈이 처지고 살이 붙어 있는 자신의 모습 말이다. 이모가 어플로 내 사진도 찍어줬는데 이건 내가 아니라고 해놓고 집에 와서 인스타 프로필 사진으로 바꿨다. 인간은 원래 모순적인 존재이다.



류이치사카모토 - 'and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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