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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파란 Feb 11. 2020

난 매일 아파, 하지만 괜찮아

강남사거리에 사이렌이 울린다. 응급차라도 지나가는 걸까. 아니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경계 알람인가 별 생각을 다하다가 위를 쳐다보니 강남 한복판에 삼성생명과 삼성과 삼성의 이재용을 규탄하는 현수막과 사이렌이다. 그러고 보니 유일하게 들어둔 보험이 하필 삼성생명인데.. 현수막에 쓰여있는 걸 보니 암보험 제대로 주지 않았니? 왜 그랬어? 아픈 사람 더 아프게 만드는 게 제일로 나쁜 건데... 


난 매일 아프다. 나이를 가리키는 숫자 앞이 바뀌면서, 회사를 그만두면서 3년 동안 놀면서 그렇게 됐다. 정확히 10킬로 가까이 쪘고 쉬면 몸이 더 좋아질 줄 알았는데 한 번 무너지기 시작한 몸은 내내 시끄럽게 사이렌을 울리는 것만 같다. 내 몸 한복판에서 내내 울린다. 브런치에 글 쓰는 게 뜸해진 것도 매일 아픈 얘기만 할 수 없어서였다. 지겹잖아. 내가 다 지겨운데. 누구는 그런 말을 할지도 모르겠다. 여태 뭐했어? 운동도 열심히 하고 살도 빼고 잘 살면 되잖아? 그래... 말하기는 쉽다. 누구든 남의 얘기하는 건 너무 쉬운 거다. 


밤만 되면 잠을 잘 자지 못한다. 일주일에 두세 번은 꼭 그런 거 같다. 나머지도 한 시간 안에 자 본 적이 없다. 두 시간이 넘도록 이불속에서 뒤척이다가 자는 편이다. 어제는 잠을 못 자는 나한테 너무 화가 나서 펑펑 울었다. 눈물이 그렇게 펑펑 나는 건 오랜만이었다. 새벽 4시까지 잠은 안 오고 자꾸만 내 심장 박동만 크게 들리고 머릿속에서 약한 멀미가 나는 것 같았다. 층간소음으로 쿵쿵 거리는 위층은 그 시간에도 발소리가 났다. 평소 같으면 욕했겠지만 이상하게 함께 깨어있다는 생각에 위로받았다. 


지난달 초 어지러움증으로 크게 혼나서 이석증인가 싶어서 이비인후과 갔더니 아니란다. 문진만 하더니 이석증은 그런 게 아니란다. 그럼 뭐죠? 선생님? 그럼 내 몸은 왜 그런가요? 내가 다니고 있는 순환기내과나 신경외과에 가야 한단다. 울 엄마 때도 그랬지만... 어지러움과 실신의 원인은 의사들도 사실 잘 모른다. 존 스노우도 모르는데 의사들도 아무것도 몰라.


엄마는 내가 부정맥이 있으니 당장 담당 의사한테 가라고 했고(우리 엄마 대게 웃기다. 자기는 그렇게 병원 안 가서 속을 태워놓고서 나보러는 병원 가란다...) 동생은 외탁을 한 내 멘탈의 문제란다. 내가 볼 때도 동생 말이 맞는 것 같다. 약물로 조절하고 있으니 내 부정맥은 괜찮아졌다. 무려 하루에 두 번이나 약을 먹고 있다. 물론 밤만 되면 부정맥 증상은 더 잘 나타난다. 약을 먹어도 종종 그렇다. 부정맥의 원인도 밝혀진 게 없다. 내 몸의 모든 증상들이 원인불명이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몸에서 보내는 신호들이 나는 지겹다. 


지난 3년 동안 내 몸의 상태는 한 산을 넘으면 또 다른 산이 있고... 이런 식인데..

오랜 가슴 두근 거림 증상은 부정맥으로 밝혀졌고 건강검진에서 고지혈증 약을 달고 살게 되었으며 신발 한 번 잘못 신고 족저근막염이 생겨 한의원으로 침을 맞으러 다녔고 청소기를 돌리다가 눈앞에서 세상이 원형으로 팽글팽글 도는 걸 경험했고 비듬이 생겨 온갖 샴푸로 난리를 쳐도 안되다가 니조랄을 쓰고 잠잠해졌으며(그동안 비듬 있는 사람들, 머리 자주 안 감아서 생긴 거라고 편견 가졌던 거 진심으로 사과한다. 성인 비듬은 그런 게 아니야...) 또 지금은 허리 통증으로 다시 침을 맞으러 가야 하는데 참고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나만 아픈 것 같은데 검색해 보면 죄다 아픈 것 같다. 아픈 사람이 왜 이렇게 많은 건가. 검색해보는 블로그와 유튜브 댓글엔 온통 아픈 사람뿐이다. 웹은 정말 신기한 세상이다. 찾는 대로만 보인다. 영화 속에 나왔던 대사 중 정말 좋아하는 대사가 있는데 "프레이밍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는 말이다.(무슨 영화게??)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각자의 프레이밍으로만 세상을 보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항상 하는 말인데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보려면 다른 거 필요 없고 그 사람 유튜브 메인 화면만 봐도 된다.   


그리고 2020년이 되자 일이 끊겼다. 지난주에 "이런 건 얼굴을 보고서 얘기해야 하는데..."로 시작하는 전화를 받았고(보통 얼굴 보고 얘기하자는 것 치고 좋은 일 못 봤다) 내게 주던 일의 주요한 일들은 다른 곳에 넘겨졌다. 컨설팅 회사에 맡기기로 했다는 말에 개인 프리랜서는 어떻게 반박할 수도 없다. 그동안 아무런 대책도 없이 감나무 밑에서 감 떨어지길 바라며 멍하니 주던 일만 하던 나 같은 사람은 새해 들어서 내 몸과 함께 더 이상 떨어질 곳도 없이 곤두박질 쳐진 느낌이다. 


잠도 못 자고 어제 울어서 퉁퉁 부은 눈으로 강남에 갔다. 일 때문에 하는 미팅이었다. 큰 일은 아니었고 다만 따내면 매달 정기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런 일마저 나는 보이지 않는 누군가와 경쟁을 해야 한다. 디테일한 견적까지 맞춰보는 내 앞의 키가 작고 마른 체구의 팀장에게 어떻게 하면 내게 일을 맡기게 할 것인지를 생각하다가 나오면서 견적을 너무 높게 부른 건 아닌가 싶어 후회했다. 항상 자존감과 자존심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것 같다. 


나오는 길에 파리 바게트에서 양송이 수프를 먹었고 책 한 권을 샀다. 강남 파리 바게트에선 이런 것도 파는구나. 양송이 수프 맛에선 어쩐지 인스턴트 맛이 났는데 배가 고파서 허겁지겁 먹었다. 이런 날은 삿포로에서 먹었던 수프카레가 생각난다. 그날도 눈보라가 쳤었고 추웠는데 지금도 춥다. 책의 삼분의 일 정도를 읽고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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