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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파란 Dec 27. 2022

기예르모 델토로의 '피노키오'

나를 나로 사랑하기 위해서...

피노키오 동화는 아주 오래전부터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로 재현되어 온 고전이다. 하지만 피노키오가 1880년대 이탈리아 작가 카를로 콜로디가 쓴 책이라는 것은 알지 못할 확률이 높다. 이 책은 가장 많이 번역된 이탈리아어 책으로 260개국에 번역되었다.


'피노키오'라는 말은 이탈리아어로 '잣송이'를 뜻한다. 영화 초반, 목수 제페토는 아들 카를로스에게 완벽한 잣송이를 고르는 방법을 알려준다. 그러니 피노키오는 제페토에겐 이미 그 자체로 완벽한 아들인 셈이다. 어려서 읽었던 피노키오의 스토리는 목수인 제페토 할아버지가 만든 피노키오가 천방지축 사고를 치고 다니면서 고래 뱃속에도 갇히는 모험을 떠났다가 돌아와 인간 소년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이야기 정도로 남아있다. 어려서 피노키오는 거짓말을 하면 나무로 만든 코가 자라나는 못된 아이의 상징과도 같았다.


이 오래된 고전을 기예르모 델토로 감독이 만든다면 어떤 이야기가 될까?

이젠 하나의 고유명사처럼 인식되는 기예르모 델토로 감독의 영화는 단 5초만 보면 그의 작품인 걸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특유의 분위기와 매력을 갖고 있다. 좋아하는 감독인 데다가 평소에 보던 디즈니 만화 속 피노키오와는 전혀 다른 피노키오 캐릭터를 보자마자 안 볼 이유가 전혀 없었다. 게다가 이완 맥그리거, 케이트 블란쳇, 데이비드 브래들리, 틸다 스윈튼 같은 배우들이 참여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한 땀 한 땀 장인의 정신으로 만든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다.


이 영화를 보게 된 데는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항상 따뜻한 연말 분위기 영화를 찾게 되는 내 감수성과 최근 들어 몸과 마음이 힘들어진 이유가 가장 컸다. 크리쳐와 기괴한 상상력으로 유명한 감독의 작품이라 더 우울해지면 어쩌지 싶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기예르모 델토로 감독의 영화 중 아이들과 함께 봐도 좋을 몇 안 되는 영화였던 것이다. 나한테 기예르모 델토로의 피노키오는 따뜻한 위로였다.


이 영화는 그러니까 '내'가 '나'로서 온전하게 받아들여지고 사랑받게 되는 이야기다. 그런 의미에서 저 나무 꼬챙이 같은 엉성하기 짝이 없는 피노키오가 과연 인간 소년으로 어떻게 변하게 될까 기다렸던 나에게 이 영화의 엔딩은 완벽했다.  



그 아이는 세상으로 나아갔고, 내가 알기로, 세상도 그 아이를 받아들였다


가만 생각해 보면 우리가 슬픈 지점은,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어 자신의 진짜 모습을 애써 감추려고 할 때다. 스스로 부정하는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피노키오는 제페토에게 당당하게 말한다. 나는 카를로가 아니라 피노키오라고. 제페토가 죽은 자신의 아들을 대신해서 피노키오를 만들었다고 해도 피노키오는 피노키오다. 아무것도 몰랐던 천방지축 피노키오는 제페토를 사랑하고 자신의 온전한 모습 그대로를 봐주길 바라며, 제페토를 비롯해서 원숭이 스파차투라(케이트 블란쳇, 놀랍다. 왜냐면 원숭이는 대사가 없고 의성어 밖에 없기 때문에... 심지어 잘함. 감독에 대한 신뢰로 남은 역이라도 맡겠다고 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 영화의 내레이션을 이끌어 가는 귀뚜라미 세바스티안(이완 맥그리거)까지 모두 다 변화시킨다.



카를로가 되지도, 다른 누군가가 되지도 마라. 네 모습 그대로 살아. 난 너를 사랑한단다. 있는 그대로의 너를.


2022년, 한 해를 마무리하며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이 영화 한 편 보는 것도 좋겠지. 내가 내 모습 그대로 살기 힘들다고 해도 새 해엔 내 모습 그대로 살길, 있는 그대로의 나를 봐주고 사랑하겠다.


모두에게, 그대로의 모습도 충분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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