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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파란 Sep 28. 2023

인간 좋다고 인감 함부로 쓰지 말자

세 번째 묘비명

문구 쪽 일은 다시 안 하겠다 마음먹고 웹 공부를 시작했다. 이때만 해도 찬란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지. 실업급여를 받으며 국가지원으로 직업학교에 들어가서 6개월을 공부했다. 


이때부터 맥 기반이 아니라 PC 기반의 어도비 프로그램을 배우고, 그렇게 배우고 싶어 하던 플래시를 비롯한 하드코딩도 배웠다. 졸업 작품도 조를 짜서 만들었는데 곡 하나를 정해서 뮤직비디오를 만들고, 홈페이지를 기획하고 만드는 작업으로 배웠던 것을 총망라한 작업이었다. 


아직도 기억에 많이 남는 건 졸업 작품이 좋은 평가를 받았던 것뿐만 아니라 열정적으로 밤을 새우며 작업했던 거다. 다시 학교로 돌아간 것 같아서 즐겁게 공부했다. 


직업학교에선 일자리도 알선해 줬는데 나는 과정이 다 끝나기도 전에 면접을 보고 회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제 와서 후회해도 소용없지만 그때 가지 말았어야 했다. 일자리 알선해 준다고 처음에 바로 가지 말고 다른 곳도 면접 보고 따져보고 갔어야 했다.


새로 들어간 회사는 63 빌딩 근처였다. 회사 사람들과 빨리 친해져 비슷한 나이 또래들과 퇴근 후 한강변에서 치맥을 하거나 금요일에는 무턱대고 차를 타고 무박 2일 제부도에 다녀오기도 했었다. 회사에서 젊은 또래들과 노는 것도 한 때다. 체력이 딸리고 다 부질없다고 느껴지는 때가 오면 나이가 들거나 사회의 때가 묻은 거겠지. 


회사는 컴퓨터와 주변기기 유통회사로 게임방에 PC를 납품하거나(당시 PC방 붐이 일 때였다) 자체 제품도 개발하는 등 주로 젊은 사람들이 많았다. 회사 사장 역시 젊었는데 노다지 축구 유니폼만 입고 축구하러 다니느라 잘 보이지도 않았다. 회사 경영보다 축구를 너무 많이 했던 걸까. 그렇게 작은 규모도 아니었건만 회사 사정이 점점 나빠졌다. 


이번엔 더 최악이었다. 지난 회사는 양반이었다. 급여가 밀리기 시작했다. 지금이야 급여 밀리기 시작하면 뒤도 안 돌아보고 나와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그때는 존버하면 되는 줄 알았다. 한 달이 두 달이 되고, 두 달이 세 달이 되면서... 이게 끝날 기미가 없는 지옥으로 가는 길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런데도 버텼던 건 회사 사람들과 너무 친해졌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좋으니 돈을 못 받아도 재미있게 다녔다. 그러다가 마음에 맞는 회사 사람들과 야반도주가 아니라 주반도주를 하게 된다. 사장은 회사에 잘 나오지 않으니 없는 틈을 타 밀린 급여 대신 회사 컴퓨터 몇 대를 트럭에 싣고 다른 곳에 회사를 차리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직원들끼리 나와서 차린 회사는 집에서 다니기 힘들 정도로 멀리 떨어진 선릉 쪽이었다. 바로 앞에 선정릉 공원이 있었다. 동네는 고요하고 한적했다. 산책하기 좋은 곳이었다. 회사는 전에 택시 회사였던 주택이었는데 말 그대로 2층 양옥집이었다. 거기에서 6개월 가까이 밥솥에 밥을 지어먹고 직원이 데려온 패키니즈를 산책시켰다. 점심이면 선정릉에 가고 퇴근 후엔 근처 오뎅바에서 술이 취하도록 마셨다. 


왕복 4시간 걸리는 곳이라 출퇴근에 점점 지쳐갔다. 회사 사장은 우리를 도둑으로 몰아 고소했고, 우리는 사장을 임금체불로 고소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결론만 얘기하면 우리는 혐의 없음을 받았고 임금은 100%가 아닌 수수료를 떼고 받았다) 


회사를 설립하는데 리더 역할을 했던 젊은 이사는 우리를 회사 주주로 세워 공평하게 나누겠다고 일장연설을 했고 아직 세상 물정을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덜컥 인감을 만들어 냈다.(절대 함부로 인감 사용하는 거 아니다) 여전히 돈은 못 벌었지만 사람들과 일했던 시간은 즐거웠다. 같은 또래였고 일하러 다녔다기보다 놀러 다니는 기분이었다. 다들 열심히 일했지만 이런 식의 얘기가 늘 그렇듯 오래가지 못했다. 


6개월이나 되었나, 결국 회사는 끝났고 우리는 해체했다. 아직도 기억난다. 딱 그해 연말 마지막 날이었다. 술을 엄청 마셨고 서로 술에 취해 얼싸안고 울면서 헤어졌다. 잘 될 거야, 괜찮아를 연신 말했던 것 같다. 근데 하나도 안 괜찮고, 하나도 안 잘됐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나 가능한 회사 생활이었다. 아무리 사람들이 좋다고 해도 공과 사는 구별해야 하고 자신의 생각 없이 대세에 휩쓸려 다니는 게 가장 위험한 일이다. 가만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특히 남의 말만 믿고 자신의 신용에 영향을 끼칠 일은 만드는 게 아니다. 


회사의 비전은 중요하지만 번드르르하게 말만 늘어놓는 사람일수록 경계해야 한다. 사람이 아무리 좋아도 우리는 사회에서 만난 회사 동료일 뿐임을 잊지 말자. 생각해 보면 이때 이후로 회사 사람들과 퇴근 후 사적으로 만났던 적은 없다. 그렇다고 내가 사기를 당했거나 그 시간 자체를 부정하는 건 아니다.(재미있었다니까) 아까도 말했지만 그때 그 시절이었기에 가능한 회사 생활이었다. 


나한테 왜 이런 일만 일어나냐고? 아직까지는 괜찮아.


 
아직까지는 괜찮아. 아직까지는 괜찮아. 아직까지는 괜찮아. 


영화, '증오'에서 추락하는 남자는 계속 중얼거린다.

"아직까지는 괜찮아" 

이건 떨어지는 문제가 아니라 어디에 착륙하는지에 대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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