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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파란 Oct 18. 2023

가야 할 때가 언제인지 아는 이의 뒷모습, 잠수 퇴사

네 번째 묘비명

새로 들어간 회사는 집에서 거리가 가까운 편이지만 대중교통으로 가기는 애매한 곳에 위치해 있었다. 버스를 2번이나 갈아타야 했는데 덜컥 다니기로 했다. 다니기로 한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작은 회사였지만 나름 웹 에이전시였고 아직 젊으니 웹 쪽으로 전향할 계획이라면 돈이나 다른 조건 생각하지 않고 경력부터 쌓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잘못된 생각이었다. 그때만 해도 아프니까 청춘이다, 열정페이 등의 말이 스스럼없이 나올 때였고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며 회사를 고를 때 연봉보다 일을 배울 수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이 팽배해져 있을 때였다. 물론 그 말도 어느 정도 맞는 말이지만 젊어서도 고생하지 않을 수 있다면 하지 말아야 하고, 일한 만큼 당연히 보상받을 수 있는 곳으로 가야 했다.


이상하게 이곳에서의 선명한 기억 중 하나가 입사 첫날 식사였다. 신문지를 깔고 배달 음식으로 짜장면을 시켜 먹었다. 그게 왜 기억이 나는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날 먹었던 짜장면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고 있다. 그날의 분위기, 날씨, 습도, 온도...(웩) 입사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는데 사장과 이사는 동서 사이였고(가족 회사 가지 말자... 가 족같다.) 프로그래머 두 명, 디자이너 두 명이 다였다. 프로그래머는 과장과 대리, 디자이너는 과장과 사원인 나였다. 6명이 다인 회사에 이사도 있고 과장도 있고 사원은 달랑 나 한 명이었다. 있을 건 다 있는 회사. 구경 한 번 와 보세요. 보기엔 그냥 시골 장터지만 있어야 할 건 다 있고요. 없을 건 없답니다. 화개장터.(아니 이게 아니다...)


일은 서브 디자이너였기 때문에 메인 디자인은 과장이 다 했고 나는 주로 서브 페이지 디자인을 했다. 새로 뭔가를 만드는 것보다는 있는 걸 응용하고 유지 보수하는 일이 많았다. 중고차 사이트 일이 가장 환장할 일이었는데 그곳 사장이라는 아저씨가 수시로 와서 내 옆에 앉아 디자인을 어떻게 하라고 직접 지시할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그렇게 잘하면 니가 해라!) 글씨를 키워라. 색깔을 좀 더 강렬하게 바꿔라. 등등 주로 디자이너가 미치고 팔짝 뛸 만한 지시를 내렸기 때문에 너무 싫었던 기억이 난다.


뜬금없지만 사장은 젊고 잘생겼다. 잘생겼다는 말을 굳이 쓰는 이유는 정말 잘생겼기 때문이다. 내가 만났던 일반 남자 중에서 그렇게 잘생긴 남자를 만난 적이 그 후로도 몇 번 없을 정도로 잘생긴 배우상이었다. 그런데 잘생긴 게 별거 아니구나라는 내 선입견을 멋지게 깨준 그 사장한테 고마워라도 해야 할 것 같다.


몇 개월의 평온한 생활도 잠시, 내 사수였던 디자이너 과장이 잠수를 탔다. 월급날 바로 다음날부터 나오지 않았는데 나는 처음 겪는 일에 멘붕이었다. 당장 일은 어쩌란 말인가. 메인 디자이너지 않는가. 나한테 일말의 미안한 감정은 있던 건지 회사 사람들은 차단하고 나한테만 연락이 왔다.


나한텐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는 내용이었다. 전부터 월급 받고 바로 잠수 탈 계획을 하고 있었던 거다.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잠수 퇴사인가. 과장씩이나 되면서 이렇게 책임감이 없다니. 디자인을 꽤 잘해서 이 사람한테라면 배울 게 꽤 있겠구나 싶던 차라 아쉬움 반, 분노 반이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곧 바뀌게 되었다. 회사 사정이 좋지 않았는데(아니 왜 내가 가는 곳마다...) 내가 보기엔 영업을 하는 사장도, 회사 살림을 맡아 책임지는 이사도 어느 한 사람도 일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다가 일이 터졌다. 급여가 밀리기 시작한 거다. 전 편을 본 사람은 알겠지만 지겹게도 또, 또, 또다.


근데 문제는 급여가 밀리는 게 아니라 차별 지급한다는 데 있었다. 급여날이 며칠이나 지나고 감감무소식이라 프로그래머 과장한테 은근슬쩍 급여 들어왔냐고 물었는데 이 냥반이 눈치 없게 들어왔다고 말했던 것이다. 과장이 말실수를 했거나 이사가 미리 언질 없이 과장부터 넣어줬거나 둘 중에 하나겠지.


적어도 전에 회사는 모든 직원한테 급여를 주지 않았는데(그것도 나쁘지만) 이건 사람도 몇 없는 코딱지 만한 회사에서 누구는 주고 누구는 안 주는 게 말이 되질 않았다. 게다가 내 월급이라는 건 정말 개미 오줌만큼도 안 되는 작은 돈이지 않는가. 벼룩의 간을 처먹어라!


그 말에 소위 빡이 돈 나는 이사한테 따져 물었다. 이사는 곧 넣어주겠다며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라면서 회사의 사정만 얘기할 뿐 내가 원하는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일개 사원이 이사한테 대들었다는 소식을 들은 사장이 당장 날 밖으로 불러냈다.


사장은 회사 앞 육교 아래서 담배를 피우며 큰 키로 나를 내려다보며 어린 네가 어른한테 그런 식으로 대들면 되냐. 어디서 배운 버릇이냐면서 나를 몰아세웠다. 그때 내 안의 어떤 이성의 끈이 끊어지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던 것 같다. 화가 나면 몸을 떨며 눈물부터 흘리는 터라 엉엉 울며 고함을 쳐댔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 내가 뭘 잘못했냐. 월급을 누군 주고 누군 안 주는 게 말이 되냐. 나한테 먼저 말이라도 하고 양해를 구하지도 않아 놓고서 이러면 안 되는 거다. 내 돈 내놔라! 내 월급 내놔라!


뭐, 대충 이런 내용의 두서없는 얘기였는데 얌전해 보이던 내가 그런 모습을 보이니 사장이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게다가 길 한복판에서 여자가 울면서 얘길 하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쳐다보기 일쑤였고 상황은 역전되어 사장이 나를 달래기 시작했다.


그날의 일로 나는 퇴사를 결심했다. 그제야 월급 받고 바로 잠수 탄 디자이너 과장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고민했다. 월급만 받고 나 역시 잠수를 탈까. 어쩐지 그만둔다고 말하면 월급을 주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결국 난 잠수 퇴사는 하지 못했다. 아니 안 했다. 한 번 잠수가 어렵지. 이게 습관이 되면 곤란하다. 더군다나 그건 책임을 져야 할 사회인으로서 해선 안 될 짓 같았다. 하물며 가장 최악의 이별이 잠수 이별이라고 하지 않나. 그만둔다고 월급을 주지 않는 건 회사의 잘못이지 내 잘못이 아니며 그렇다고 말도 없이 회사를 나가지 않는 것도 그다지 좋은 방법은 아니었다.


고민하다가 사장한테 퇴사 의사를 전했고 사장도 어느 정도 눈치를 챘는지 더 이상 붙잡지 않았다. 속도 좋지, 마지막 송별회까지 해줬는데 서로 마음은 그렇지 않아도 나름 유종의 미를 거둔 셈이다. 물론 밀린 월급도 받았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이 아름답다고 사람은 처음 만났을 때 보다 어떤 이별을 하는지가 중요하다.


그때부터 회사 면접을 볼 때면 회사 복지나 규모 등에 대해 질문을 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회사에서 직원을 면접 보는 것처럼 직원도 회사를 면접 보는 게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어떤 질문을 해도 좋은 것이고 그에 대해 답해줄 의무가 회사에는 있다. 그런 질문들에 얼버무리거나 일도 하기 전에 잿밥에 관심 있는 것처럼 몰아세우는 곳은 갈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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