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볼파란 Dec 01. 2023

쫄딱 망한 연어 스테이크

네 번째 사투

인생 권태기다. 소설 '바르도'에 보면 죽은 후 또 다른 인생을 살기 위해서 서원을 해야 하며 길을 찾아야 한다. 그런 이들이 모이는 곳을 바르도라고 하는데 이 중간 지대에서 서원이 없으면 영영 길을 잃고 헤맨단다. 바로 지금 내가 바르도에서 서원을 갖기 위해, 다른 인생길을 찾기 위해 헤매는 자다.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닌 상태에서 끝없이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돈 안 되는 글을 써재끼며 지내다가 권태기와 함께 자기 비하의 시대가 도래했다. 


'망할', '짜증 나' 따위의 말을 입에 달고 살다가 어깨가 돌덩이처럼 딱딱하게 굳어지며 책상에 앉기도 괴로운 날들이 온 것이다. 나의 요리사투 또한 '올스톱'상태. 수면 리듬이 무너지고 나는 새벽까지 핸드폰 노예가 되어 말도 안 되는 영상들을 품고 지내다가 눈이 빠질 것 같은 상태다. 


집안 식구들도 모두 아프다. 겨울 초에 시작된 비염과 기침은 잦아들 생각을 안 하고 가습기를 총동원해도 다들 아파서 골골거린다. 밤이 되면 다들 괴롭고 고독한 짐승들처럼 각자 방에 들어앉아 하울링을 하듯 기침을 토해낸다. 


우연히 마트에 갔다가 통통한 연어를 봤다. 뭐에 홀린 듯 사 왔는데 두 번 정도 해 먹은 경험을 살려 이 우중충한 삶 속에 별미를 먹어볼까 싶었다. 


결론은 쫄딱 망했다. 우중충한 집안에 사방팔방 기름칠까지 해서 욕먹고, 덜 익혀서 욕먹고, 맛없어서 욕먹고. 내가 이걸 왜 했지. 어쨌든 남기지 않고 모두 꾸역꾸역 먹었다. 인생이 원래 이렇게 퍽퍽하고 덜 익고 뭐 그런 건가.


재료: 구이용 연어, 후추, 소금, 파슬리, 올리브오일, 버섯


이 돈으로 차라리 고기 사 먹을 걸. 연어는 왜 이리 비싼 걸까. 

물에 씻어 키친타월에 수분을 제거하자. 이때 제대로 수분제거 안 되면 기름에 구울 때 다 튀긴다. 어떻게 아냐고? 내가 제대로 안 닦아서 사방팔방 다 튀었거든.

소금을 뿌리고, 후추와 파슬리를 뿌려 밑간을 해둔다. 냉장고에 넣고 30분 이상 두면 된다. 소금은 생각보다 많이 뿌리자. 나는 솔솔 뿌려서 간이 안 배었다. 지금 보니, 이 크고 두꺼운 연어에 하다못해 칼집이라도 내거나 잘라서 했어야 맞다. 

연어 스테이크 할 생각을 한 것도 스페인에서 사 온 올리브오일 때문이었다. 맛있는 오일에 하면 맛있을 줄 알았지. 중불에 연어를 노릇노릇하게 구우면 되는데 두꺼우니 앞뒤뿐만 아니라 측면도 세워서 구워줘야 한다. 그리고 생각보다 꽤 오랜 시간 동안 구워야 한다. 나는 저 상태로 20분쯤 구웠는데도 안 익었다. 

요리도 오랫동안 안 하면 느는 게 아니라 줄어드는 게 맞는 것 같다. 연어 스테이크 예전에 할 때는 가니쉬도 잘해서 먹었는데 앞뒤 생각 없이 연어만 덜렁 사 와서 가니쉬 만들 게 없다. 급한 대로 버섯만 구워냈다. 

나는 저렇게 익히면 다 익은 줄 알았지. 잘라보니 안 익어서 다시 구웠다. 집에 있던 타르타르소스에 다 먹긴 했는데 왜 예전만큼 맛이 있지 않을까. 요리 실력도 퇴화되는 건가. 


★★☆☆☆

정직하다니까. 

내 맛평점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