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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파란 Nov 24. 2023

내시경검사 할 땐, 계란볶음밥

세 번째 사투

10년 만에 대장내시경을 하게 되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알약으로 변한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일이다. 왜냐면 생애 처음으로 했던 대장내시경 검사가 내게는 엄청난 트라우마로 남아있기 때문이다.(그래서 이 검사를 내가 또 하게 될 줄은 몰랐다) 검사 자체가 아니라, 검사 시 먹는 약 때문이다. 


우선 나는 물 자체를 많이 마시지 않는다. 하루에 1리터를 마실까 말까다. 다른 음료나 커피도 한 번에 마시지 않고 반나절동안 나눠 마신다. 생각해 보니 한 번에 많은 양의 수분 섭취를 못하는 것 같다. 지난번에 멋모르고 한 검사 때는 물약 마시다가 다 게워냈다. 검사가 안 될 줄 알았는데 다행히 진행할 순 있었다. 


이번에 가서 받아 온 약은 알약이더라. 얼마나 좋은지 몰랐다. 근데 알약도 알약 나름이더라. 이틀에 28알을 먹어야 한다. 알약 크기도 내 새끼손가락 만하다.(물론 오버다) 알약 먹다가 배불러 죽는 줄. 근데 알약보다 생수 2리터를 1시간 동안 마셔야 하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인 줄 몰랐다. 


물먹는 하마인 내 동생은 물 마시며 끙끙 앓는 나를 한심하게 봤다. 물 마시는 게 무슨 어려운 일이라고 그렇게 엄살을 부리느냐면서. 정말 한동안 물은 쳐다도 안 볼 것 같다. 암튼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나마도 다 못 마시고 갔다. 여차저차 여러 가지 웃지 못할 해프닝은 있었지만 어쨌든 내시경 검사는 잘 끝났다. 허허.


검사 전에 2~3일 전부터는 먹는 음식도 조심해서 먹어야 하는데 검사 전 내 마지막 식사가 계란볶음밥이었다. 옆에서 피자 먹는데 나는 계란볶음밥을 해 먹었다.(너무 한 거 아냐? 피자라니) 계란볶음밥은 알리오올리오 파스타와 더불어 내가 유일하게 해 먹는 요리다. 


너무 쉬운 요리지만 나는 남달리 잘한다.(으쓱) 왜냐면 내 요리를 전혀 먹지 않는 내 동생조차 가끔씩 해달라고 하기 때문이다. 자기가 해 먹어 봐도 내가 하는 맛이 안 난다고 했다. 후훗. 


내가 아무리 엄마 음식을 좋아해도 엄마한테 라면 끓이는 걸 맡기지 않는 것처럼, 사람은 누구나 잘하는 게 있으면 못하는 게 있고 그런 거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고 나한테는 그게 계란볶음밥이다.


재료: 계란 2개, 밥, 간장, 파


파기름을 낼 때도 있고 안 낼 때도 있다. 내시경 전에 파를 먹어도 되는 건지... 암튼 검사는 잘 됐으니까. 귀찮으면 안 하지만 기름을 두른 팬에 파를 대충 가위로 잘라 넣고 달달 볶는다. 

계란도 1개 넣을 때도, 2개 넣을 때도 있다. 이건 밥 양을 보고 결정해야 한다. 이날은 남아있던 흰밥이 많아서 2개 넣었다. 

평소엔 잡곡밥을 먹지만 이때는 내시경 검사할 때라 흰밥으로 했다. 잡곡밥이든 뭐든 상관없다. 하지만 확실히 흰밥이 더 맛있다. 여기서 중요한 건 계란을 깨 넣고 바로 밥을 넣어야 한다. 계란이 익어버리면 안 된다. 그 위에 바로 간장을 부어준다. 간장은 2숟가락 정도. 역시 소금 같은 건 따로 넣지 않는다. 

가끔 굴소스 같은 걸로 할 때도 있지만 이상하게 난 굴소스는 별로다. 오로지 간장으로 간을 맞춰주는 게 최고다. 나는 간간하게 먹는 편이라 간장 색깔이 안 나면 더 부어주기도 한다.(내분비내과 샘, 죄송;;;) 밥을 계란과 한 몸이 되게 비벼줘야 한다. 불은 너무 세게 하면 다 탄다. 

다 비벼주고 나면 계란이 약간 노릇노릇하게 보일 때까지, 밥이 고들고들해질 때까지 불에 볶아준다. 이때 잘 맞추지 않으면 계란볶음밥이 죽밥이 되거나 너무 오버쿡 되어버릴 수도 있다. 밥이 고들고들해져야 맛이 있다.

플레이팅... 그거 뭔데? 

암튼 그릇에 덜어준다. 주위에 떨어진 밥알갱이들은 적당히 스티커로 가려준다.

내시경 검사 할 때라 위에 깨는 안 뿌렸지만 생각나면 깨도 뿌려주면 된다. 

계란볶음밥은 여기에 김치만 갖고 먹어도 되지만 이날은 내시경 검사라 밥만 먹었다. 그래도 맛있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는데... 끝없이 들어간다. 이렇게 먹으면 밥 2 공기는 뚝딱이다. 


내 별점은,

★★★★★

동생이 해달라고 한다니까. 

나는 아무래도 내가 만든 요리를 좋아하는 것 같다. 

뭐, 자신감이 중요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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