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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파란 Oct 27. 2017

이토야의 세계.

도쿄 여행 04

2017년 10월 11일 수요일


긴자는 도쿄의 첫 백화점이 들어선 거리다. 가장 비싼 거리기도 하다. 아사쿠사에서 긴자로 넘어갔을 때의 느낌은 매우 드라마틱하다. 일본의 옛 정서가 느껴지는 아사쿠사에서 마천루가 즐비한 긴자의 거리는 마치 미래 도시로 타임머신을 타고 간 기분이 든다. 


각종 명품 브랜드로 둘러싸인 거리는 깨끗하다. 사람들도 많다. 관광객들보다는 잘 차려입은 일본인들이 더 많아 보인다. 우리나라 청담동 느낌이 나는 곳이다. (사실 청담동 잘 가보지도 않았다.) 시간이 벌써 오후 4시가 다 되어가니 더 이상 두리번거릴 시간이 없다. 서둘러 '이토야'를 찾아 나선다. 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유명한 빨간 클립 간판이 보인다면 다 온 것이다. 

이토야의 로고 간판과 상징물 레드클립


이토야는 1904년에 설립되어 44년에 폐업했다가 46년에 전쟁으로 전소된 건물을 복구하면서 다시 시작하였다. 문구점이자 미술 재료들을 파는 이곳은 문구나 미술에 관심이 없어도 많은 관광객들이 다녀가는 명소가 되었다. 특히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쇼핑할 것들이 지천에 널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 수 있다. 이곳에 들려 아무것도 사지 않고 나오기는 힘들다. 하나같이 사고 싶은 물건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이토야는 레드클립이 있는 본관과 만년필 모형이 있는 별관으로 나뉘어 있다. 2012년에 만년필 코너가 따로 독립해서 K.ITOYA라는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다. 별관인 K이토야는 그래서 더 전문가 포스가 느껴지는 코너들로 꾸며져 있다. 만년필은 물론이고 각종 미술재료들이 넘쳐난다. 미술을 전공하는 사람들은 꼭 들려보면 좋을 것 같다. 이토야는 고급 문구 제품들을 파는 곳이라 가격대는 싸지 않다. 하지만 눈이 휙휙 돌아가는 제품들이 많다.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맨 꼭대기층에 올라갔다가 계단으로 내려오는 길을 택했다. 무릎을 조금 더 보호하고 싶다면 차근차근 한 층씩 구경하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갔다가 맨 꼭대기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자. 나중에 층별 에스컬레이터가 운행되는 걸 알았다. 불행하게도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는 보이지 않아서 터덜터덜 계단으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11층 가든. 올라가지말자. 정말 이것 밖에 없다.


12층인 꼭대기에는 카페가 있어서 11층부터 시작했다. 카페에서 만드는 음식 재료를 직접 키운다는 게 신기해서 일부러 11층에 내렸지만 생각보다 좁고 아무것도 없다. 한쪽 벽면에 키우는 채소가 전부였다. 직접 키운 채소를 따다가 샐러드라도 만들어주는가 보다 하고 허무해져서 10층으로 내려왔다. 


층별도 생각했던 것보다 좁았다. (하긴 이토야 건물 자체가 명품 브랜드 건물 사이에 낀 아주 가늘고 긴 빌딩이다.) 하지만 주제별로 잘 정리 정돈되어 있어 사람들이 많아도 움직이고 구경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 본관인 G이토야는 층마다 새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중에 K이토야로 넘어가서는 재즈음악이 나왔다. 새소리와 재즈음악을 선곡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만큼 두 개의 관은 오가는 사람들도 다르고 콘셉트도 달라 보였다. 실제로 별관에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모두들 앞 쪽에 있는 본관에만 우르르 들어갔다가 가는 모양이다. 별관은 전문적인 느낌이 더 들었다. 


이토야에 가면 누구나 찍어 올리는 페이퍼월. 나는 내가 좋아하는 톤을 찍었다.
서랍을 열면 무수한 샘플들이 있다. 원하는 것을 충분히 만져보고 골라 카운터에 가져가면 된다.


이토야에서 한 가지 놀랐던 것은 샘플 관리였다. 좁은 곳에서 특히 지류 샘플 관리는 철저하게 이루어졌다. 페이퍼 월 자체도 샘플이다. 패턴과 색상별로 한쪽 벽면을 채운 정사각형의 지류 샘플이다. 각각의 종이에는 넘버와 지류 이름, 그램수가 쓰여있다. 꺼내서 충분히 만져보고 원하는 샘플을 뽑아서 카운터에 가져가면 된다. 카운터에서 샘플 넘버로 종이를 찾아서 포장해서 준다. 반납한 샘플들은 직원들이 다시 와서 껴 넣는 식이다. 벽뿐만이 아니라 쇼케이스 서랍장들을 열면 수많은 샘플들이 줄을 맞춰 놓여 있다. 종이 샘플들은 그 자체로 인테리어고 예술이다. 색상별로 각각 다른 패턴들로 놓여 있는 샘플들을 열어보고 탄성이 나왔다. 


전에 다니던 회사의 특성상 행사들이 많았고 내부에서 챙겨야 할 인쇄물들도 많았다. 남대문과 충무로가 가까워서 알파문구와 출력소에는 뻔질나게 들락거렸다. 남대문 알파문구에 가면 종이를 사는 것에 곤란할 때가 많았다. 종이들은 다들 빼서 보고 넣어놓는 것을 반복해서 끝이 너덜거리고 찢어져 있을 때가 많았고 아예 A4 사이즈로 묶어 파는 종이들은 비닐 포장되어 있어 직원들 몰래 뜯어서 만져보기 일쑤였다. 우리나라 문구점들 종이들도 이렇게 정리되면 참 좋을 텐데... 굳이 커다란 종이들을 꺼내보느라 난리 치지 않아도 좋고 직원들도 관리하기 편할 텐데. 


쓸데없이 예뻐서 필요도 없는데 사고 싶어서 한참을 만지작 거린 천 타올. 뜯어서 쓸 수 있다.
너무 귀여운 스모선수 포스트잍. 동생 닮았다며 이거 사다주냐고 카톡했다가 죽을뻔 했다.


1층까지 내려갔을 때 이미 층별로 몇 가지 쇼핑을 한 상태였다. 나처럼 층별로 계산을 해도 되고 아니면 한꺼번에 해도 된다. 사고 싶은 게 너무 많았다. 특히 편지지와 카드 엽서들. 분명히 사가면 처치곤란 쓰레기가 될 거라고 설득했지만 이건 꼭 필요할 거라고 우겨서 산 것들이었다. 그린 스프라이트 반투명 파우치(물건 넣어 보관하기 좋을 거야)와 물방울무늬 종이봉투(이건 실제로 사탕과 초콜릿을 담아 사용했다), 그리고 조그맣고 귀여운 고양이 달력(회사 다니는 동생한테 주는 선물이다)과 파스텔톤 인덱스 플래그(현재 포스트잇 찢어 붙이고 있는 독서에 꼭 필요했다)였다. 

꼭 필요 없지만 꼭 필요할 거라고 우겨서 산 쇼핑샷.
별관까지 구경하고 나와서 한 컷. 두 개의 이토야. 만년필 상징물이 잘 안보이네.


자연스럽게 발길은 별관 K이토야로 향했다. 바로 뒤편에 있다. 6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때쯤엔 내가 지쳐있어서 구경을 하는 둥 마는 둥 했다. 천천히 내려와 어디로 갈지 생각하다가 카페 드 람브르로 향했다. 이토야 반대편에 있어서 꽤 걸어야 했다. 과연 카페에 갔다가 유라쿠초 무지 북스까지 갈지 미지수였다. 카페인이든 뭐든 집어넣고 생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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