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부모, 시누이 대 며느리
아빠는 이제 우리 안부만 전하는 통화를 하자고 하고, 엄마는 끝난 일이기에 더 이상 입에 올리지 말자고 한다. 동생 부인이랑도 말이 잘 끝났다며... 그런데 자꾸 생각이 난다. 집에 방문했을 때, 그 차가웠던 표정과 가족들이 다 같이 있는 거실이 아닌 식탁에 멀찌감치 앉아서 전화기로 무언가 메시지만 보내던 모습. 동생과 우리는 애써 화기애애함을 지속했지만, 흘끔흘끔 동생 부인의 차가운 태도를 계속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가야지, 이것만 하고 가자, 게임을 재밌게 하고 있던 아빠와 4명의 손주들을 보면서, 자꾸 가야지 가야 지를 되뇌고 부추겼다. 아무리 유쾌하고 긍정적인 사람이라도 그 자리에 있었다면, 우리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쫓기든 집을 나섰고, 더 놀고 싶다는 아이들을 겨우 달래서 집에 왔다. 엄마가 만든 된장과 고추장, 달콤한 향기가 가득한 딸기, 커다란 두 꾸러미의 화장실 휴지를 가득 싣고 기대에 차서 오긴 했지만, 이런 상황을 예상 못한 건 아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온 가족이 못 만나며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 마음은 만남으로써 해결될 수도 있을 것이다. 서로가 노력한다면 말이다.
시누이라는 입장은 의례 불편하게 만드는 얄미운 입장이라고 여겨지므로, 엄마는 나에게 어떤 대화도 개입도 하지 말라고 하신다. 그리고 그 말을 나는 들을 수밖에 없다. 얼떨결에 나는 문제를 일으킨 사람이 되었고, 의견을 표명하거나 해결에 적극 나서서도 안 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우리 아빠에게 엄마에게 그리고 지금은 나에게 뾰족한 날을 세우는 그 입장이 나는 화가 나기보다는 안타깝다. 미움은 그걸 받는 사람보다도 그걸 마음에 가지고 있는 사람이 더 아픈 법이다. 그리고 미움을 키우는 것은 더욱 자신에게 좋지 않다. 내가 그 마음을 모두 헤아릴 수는 없지만, 우린 누구나 행복해야 하는 권리가 있으므로 그에 대한 노력을 해야 한다.
어렵다면 한 없이 어려운 관계이지만, 또 조금만 잠깐이라도 눈을 질끈 감는다면 또 쉬운 관계가 될 수 있다. 내가 가진 입장을 떠나서, 이 만큼 삶을 살아오면서 그렇게 느꼈다. 어색한 침묵을 깨면서 타인이나 가족에게 배려하는 말을 건네거나, 딱히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내 일상을 이야기하는 것, 그저 잠시 반짝이는 눈으로 상대방을 바라보는 것, 반갑다는 것을 인사에 표현하는 것, 그냥 그런 작은 것들이 더 좋은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