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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원한 바람 Oct 31. 2023

글로벌 마케터가 될 거야

되어보니까 별 것 아니었네.

엄마는 나에게 심부름을 많이 시키셨다. 아빠와 사업을 하느라 늘 바쁘셨고, 내 동생은 밤에 밖에 혼자 나가는 것을 엄청나게 무서워했다. 그래서 항상 심부름은 내 독차지였다. 대문을 열고 어둡고 주황색 등이 만드는 빛의 그늘을 따라 매끈하지 않은 골목길을 걸어 나가 슈퍼마켓으로 갔다.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알록달록한 소스와 조미료 병들을 보고 있자면, 나도 하고 싶었다. 이런 제품을 만들고 전 세계에 공급하는 그런 일. 각종 제품들이 내세우는 문구와 뒷 포장에 인쇄된 짤막한 말들. 어떻게 시작했고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 회사가 이루고 싶어 하는 게 무언지, 라벨을 읽는 것은 언제나 흥미로웠다.


그랬던 것 같다. 고등학교 때, 외교관이 될까 아니면 글로벌 마케터가 될까, 정치외교학과와 경영학과 중에서 고민했던 일. 그리고 결국 경영학을 선택했다. 마케팅 관련된 과목은 모두 이수했고, 도서관에 마케팅 관련된 책들은 모조리 읽었다. 아시아 태평양 정치를 호주에서 공부했고, 컨설팅 인턴을 하기도 했지만, 결국 마케팅 부서에서 일을 시작했고, 일의 특성상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지 별생각 없이 바쁘게 일을 해나갔다. 


이직을 하고, 글로벌 외국계 기업에 들어갔다. 비로소 글로벌 마케터로 첫 발을 디딘 셈이다. 본부에서 개발한 제품을 국내에 마케팅하는 일이었다. 그 후, 제품 개발 쪽 upstream에서 일하고 있다. 글로벌 본부에 입성한 셈이다. 벌써 10여 년이 훌쩍 넘었으니, 글로벌 마케터가 된 것 임에 분명하다. 그렇네. 그날 주황색 불빛에 어두운 골목을 향해 대문을 열고 발을 내딛는 순간, 느꼈던 조금의 두려움, 거리낌, 그리고 반짝이는 물건들을 슈퍼마켓에서 보게 될 거라는 기대감, 그 느낌이 나를 여기까지 이끌었던 것 같다. 사람들이 만족하며 고르고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 보겠다는 마음, 그리고 나처럼 신나는 마음으로 제품을 대하게 하면 좋겠다는 마음. 그 마음이 여기로 이끌었던 것 같다.


꿈이 이루어진다면 그 안도와 허무가 곧 닥친다던데, 그럴듯하다. 하지만, 아직 더 하고 싶은 일이 많다는 것, 더 잘해보고 싶다는 것, 더 사업을 키우고 싶다는 마음은 그대로 있다. 결국 내 꿈은 그런 직업을 가지는 것이라기보다는 그런 분야의 일을 더 잘 해내고, 제품을, 가치를 창조하고 싶다는 것인 것 같다. 이런 마음으로 오늘도 출근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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