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서 내가 결혼했구나
나는 낭만적 사랑, 사랑해서 결혼한다를 믿지 않는다. 이게 꼭 내가 낭만에 반대한다는 것보다는 어렸을 때 미디어에 많이 노출되지 않았고, 또 내가 즐겨 읽어왔던 책 목록에는 그런 이야기들이 없다. 의식적으로 내가 피해왔던 것 같다. 성에는 관심이 많았지만, 이성관계에는 관심이 없었다. 게다가 나 자신을 여성으로 인식하는 데는 아주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내가 결혼을 결정한 것도 사랑이라는 아주 뜨거운 감정은 아니었다. 내 말을 귀 기울여 들어주는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야심 찬 젊은이에게 내가 많이 도움을 줄 수 있겠구나. 그리고 내가 그의 성장을 도와주는데 내 에너지를 낭비한다는 생각이 안 들려면, 그가 내 가족이면 되겠구나 라는 황당한 생각에 이르게 된다. 진짜 지금 생각해도 미친 생각이다.
내가 누구를 도와줄 수 있다는데 엄청난 재미를 느낀 것 같다. 그리고 그때 내 생각을 진지하게 듣고 매일 배우려는 열정적인 청자가 그 밖에는 딱히 없었던 것 같다. 중학생 때 이후로는 정말 없었다. 시험 보고 선발되어 들어가는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알게 된다. 이 세상에 공부 잘하고 잘난 애들은 다 여기 있구나. 더 이상 안다고 뻐길 수 있는 기회는 없겠구나. 대학 때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금도 그런 가르치는 재미가 계속되냐고 묻는 다면, 11년에 되어가는 지금, 정도는 줄었지만 아직도 계속되는 것 같다.
그리고 또 하나는 그게 진짜 오늘 말하고 싶은 것인데, 나 자신을 통째로 받아들여주고, 가끔 친절한 대접을 받는 것, 그게 내 결혼을 유지하는 이유인 것 같다.
이상하게 혹은 안 좋게 들릴 수도 있지만, 우리는 화장실이나 샤워를 할 때, 문을 닫지 않는다. 그냥 심천에 작은 집에 살 때부터 집의 작은 구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그냥 그게 자연스러웠다. 집이 커진 지금도 좀 그렇다. 내가 샤워를 할 때, 그가 세면대를 사용한다거나 하는 건 뭐 매일 일어나는 일이다. 내가 샤워를 끝내고 샤워 도어를 여는 순간 걔는 수건을 건네준다.
문득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내가 이래서 결혼했구나. 내가 이 생각을 그에게 말한 이후로 그가 집 어디에 있든지, 샤워를 마친 내 손에 언제나 수건이 건네어졌다. 마치 그에게 이건 가장 성스러운 의무라도 되듯이 말이다.
결국 다른 사람들과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은 기대하지 않았지만 주어지는 작은 친절인 것 같다. 사회에 대한 커다란 의무나 규칙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 내가 잘 알거나 혹은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받는 친절, 그리고 내가 베푸는 그 친절이 세상을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예의이고 그리고 우리가 같이 살아가고 있다는 의식을 일깨워 준다.
돌아보면 특히 학생으로 살아온 16년 정도의 세월이 온통 내가 하는 공부에 집중해서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생각으로 점철된 것 같다. 그 한 가지 생각이 학교에서 집에서 사회에서 주입되었고, 다른 사람을 도와라 라는 말은 책에 페이지가 남아서 그냥 인쇄된 장식 정도로 간주되었다.
사실 세상은 나 혼자 열심히 해서 경쟁에서 이기는 기쁨보다는 동료에게 작은 도움을 주고 고맙다는 인사를 받는 것, 길거리를 걷다가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받는 작은 친절에서 나온다는 것을 뒤늦게야 깨닫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