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게임 두 세계를 넘나드는..
서울국제도서전 마지막 날, 오후 2시 30분에 시작된 김초엽 작가의 강연에 참석하게 된 것은 일종의 행운이었다. 이미 복도까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부지런히 발걸음을 재촉한 덕분이다. 행사장은 열기로 가득 찼고, 입장과 동시에 다들 스마트폰을 꺼내 들어 사진을 찍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사진이 잘 나와야 한다는 농담 섞인 멘트에 모두가 웃음을 터뜨리며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강연이 시작되었다.
김초엽 작가는 현대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SF 작가로, 특유의 섬세하고 깊이 있는 글쓰기로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그녀의 작품들은 주로 과학적 상상력과 인간적인 감성을 결합해 독특한 세계를 그려내며, 특히 장애와 여성의 경험을 중심으로 한 서사로 주목받고 있다.
김초엽 작가는 편안한 미소로 청중을 맞이하며 본격적인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도서전의 주제가 걸리버 여행기의 마지막 여행과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서 시작된 강연은 자연스럽게 ‘SF와 게임’이라는 주제로 흘러갔다. 작가는 자신이 왜 SF 게임에 흥미를 갖게 되었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고민을 했는지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SF와 게임, 두 가지 모두 깊이 있는 주제이지만 이를 쉽게 풀어내려는 작가의 노력은 청중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그녀는 SF 소설과 게임이 가진 독특한 매력에 대해 이야기하며, 게임 속에서의 경험이 어떻게 현실과 맞닿아 있는지 설명했다. 특히 SF 게임을 주제로 책을 쓸 때, 게임을 잘 모르는 독자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주석을 달고, 쉽게 풀어내려는 시도가 엿보였던 대목이었다.
강연이 진행될수록 작가가 게임에 얼마나 깊이 빠져 있는지, 그리고 게임이 그녀의 글쓰기와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생생하게 느껴졌다. 최근에 즐겼던 게임들, 특히 '엑스컴'을 예로 들며, 게임을 통해 느낀 감정과 배운 점들을 공유하는 부분에서는 그녀의 열정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청중과의 질의응답 시간은 또 다른 하이라이트였다. 다양한 질문들이 쏟아졌고, 그에 대한 작가의 진솔한 답변은 청중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했다. 특히, 게임이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어떻게 다가갈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변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작가는 장애와 게임의 접점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자세를 보여주었다.
행사의 마지막, 김초엽 작가는 소감을 전하며 앞으로도 다양한 이야기로 독자들과 소통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강연장을 나서며, 나는 그녀가 말한 '다른 세계를 경험하는 것'의 의미를 다시금 곱씹어보았다. 게임이든 소설이든, 그 매체를 통해 우리는 새로운 세계를 만나고, 그 속에서 나를 발견하게 되는 것 아닐까. 책과 게임, 두 세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그녀의 이야기는 나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겼다.
이날 강연은 그저 하나의 행사가 아닌, 미래의 이야기에 대한 무한한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던 특별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김초엽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그녀가 그려낼 또 다른 세계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끝으로, 김초엽 작가의 발음에 잘 적응이 안 되어서, 나만 이상한가 싶어 주변을 둘러보니 속기사가 모니터에 타이핑을 해주고 있었다. 그 상황이 더 이상해서 나중에 찾아보니 어린 시절부터 청각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 발음에도 어려움을 겪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이렇게 큰 행사에 참석해서 강연에 참여하는 용기를 보여줬다는 것에 다시 한번 놀라웠다. 그 모습에 나도 용기를 얻었다. 그녀의 서사를 담은 책 <사이보그가 되다>를 꼭 정독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