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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취한 형님들

by 부소유

고향에 이틀간 일정이 있어서 다녀왔다.


에어비앤비로 터미널 근처의 숙소를 2박 연박으로 잡았었다.

1박 3만 원에, 1인용 싱글침대, 2인 불가.

딱 좋았다.


숙소 체크인을 하고 저녁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나왔다.


신앙심이 충만했던 시절 성가대를 열심히 했었다.

함께 소리 내서 노래를 한다는 것이 좋았고 성령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때 그 성가대 형님 두 명을 6년 만에 만나기로 했다.


만나러 가는 길 이른 저녁부터 거하게 취한 사람이 전봇대를 잡고 겨우 서서 인사불성이 되어 있었다.


그의 주변에는 경찰이 다섯 명이나 출동해서 붙어있었다.


“씨발 좆같은 일이네,

중요한 일을 해야 할 경찰이 저 새끼 때문에 여기 모여있네.

저게 다 내 세금 아니야.”


어떤 어르신이 소리 높여 말했다.


난 조금 지켜보다가 얼른 자리를 피해서 약속 장소로 걸음을 이동했다.


“씨발 좆같은 나라에 좆같은 새끼들만 가득하네. 그쵸?

자꾸 비속어를 사용해서 좀 그렇죠? 자지라고 할까요?

그것은 국어사전에 있는 단어예요.”


많이 듣던 목소리가 뒤에서 따라오더니 이내 내게 말을 건다.


그 어르신이다.

그렇게 약속장소에 가는 길 10분간 그 어르신과 대화했다.

아니. 대화를 했다기보다는 어르신의 말을 거의 들어주었다.


지금 사회에 상당히 불만이 많은 분이었다.

그 정정함과 동안의 얼굴(?) 비해 나이가 74살이라는 것에 한번 놀랐고,

소주 4병을 하셨다는 것에 두 번째 놀랐다.

게다가 대화 내내 그렇게 찰지게 욕설을 내뱉는 사람은 처음 만나 봤다.


그 어르신과의 아쉬운 대화(?)는 마무리하고 각자의 길로 갈라졌다.


성가대 형님들을 만났다.

거의 7년 만의 모임이다.

매주 만나던 형님들인데 각자 먹고 사느라 바빠서 이렇게 모이기가 힘들었다.

두 형님은 여전히 총각들이다.


형님 1은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매우 무난하게 살아왔다.

형님 2가 문제다.

빚쟁이에게 시달려 4억의 빚을 갖고 인천에서 지방으로 야반도주했던 형이다.

그때 갑자기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도 와서 얼굴을 몇 번 봤다. 그게 6년 전이다.

술, 도박 그 두 개에 빠졌었다고 한다.

이 밖에도 듣는 얘기마다 그야말로 다이내믹, 스펙터클하다.


형님 2의 굴곡진 인생이 참 안타까웠다.

주변에서 본 최고의 보컬이자 테너이다.

먼 길 내려와서 결혼식 축가도 해준 형님이다.

성당결혼식이라서 음향이 좋지 않은데

그 음향설비를 무시하고 조승우의 지금 이 순간을 열창했다.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지금 이 순간.

마법처럼

날 묶어왔던 사슬을 벗어던진다.

지금 내겐

확신만 있을 뿐

남은 건 이제 승리뿐..”


그 노래를 노래방에서 또 열창했다.

가사도 너무 좋다.

요즘 이런 마음으로 글을 쓰는 것 같다.


어느새 형님 2는 만취했다.

그 형님과 성가대 활동했던 15년 전에도 늘 만취하고 인사불성이 되었던 형이다.

여전한 모습이다.


아니다. 더 심했다.

가게에서 밖으로 나왔는데 그 형은 사정없이 여기저기 노상방뇨를 했다.

개가 된 것이다.


형님 1도 그 형님이 어떻게 제어가 안되었다.

내 숙소에 같이 가자는 말도 안 되는 얘기를 가볍게 무시하고

겨우 택시에 태워서 집에 보냈다.


만취한 형님들과 피로한 하루였다.

여기서도 무수한 소재가 떠오르는 난 글쟁이가 다 되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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