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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적의 환경

by 부소유

선택을 존중받았다.

한 번은 새로운 일을 배우고 싶지 않다고 윗 선에 보고했고 그 선택을 존중받았다.


예전 같았으면 당치도 않은 일이다.

사실 아직 대부분이 선택의 노예로 산다.

선택을 존중받는다는 말도 웃긴 이야기다.


내가 잘난 것은 아니다.

선택은 늘 그렇듯 그에 따른 결과가 따라왔다.


부재기간 동안 기가 막히게 인사규칙이 개정되었다.

승진심사를 본인이 신청해야 검토 후 결정된다.

신청 기간이 지나서 복귀한 내게는 그런 기회조차도 없었다.

신청했더라도 이번 선택으로 아마 빛의 속도로 탈락했을 것이 뻔했다.


그래도 이 선택으로 시간을 붙잡았다.

새로운 것은 배우지 않고 기존의 일을 곧바로 찾아서 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것은 배우는 데에 드는 (아마도 반년이 넘게 걸릴) 시간과 노력을 아꼈다.

다른 공장으로 출퇴근하게 될지 모를 시간과 체력 (하루에 왕복 두 시간과 그에 따른 체력)을 아꼈다.


어쨌든 윗선의 선택을 거부했고,

그에 대한 보복성 인사평가는 쓰라렸다.


하지만 공의 상태로 읽고 쓰기에는 최적의 환경이었다.

매일 아침에 글을 쓰고 점심에 독서를 했다.

글을 쓰는 노동자가 되기에는 최고의 환경이었다.

출근해서 제일 먼저 도전했던 목표, 이만하면 그래도 절반의 성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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