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장엄한 매질>

by 부소유
앨리스 먼로의 단편소설


1. 느낀 점


난해한 소설이다. 주인공 로즈, 그리고 그녀의 새엄마 플로, 아버지, 이복동생 브라이언이 등장한다. 그리고 베키 타이드라는 이웃이 잠깐 등장하지만 비중이 높지는 않다.


이 소설이 난해했던 이유는 중반부까지 사건의 전개가 뚜렷하지 않다는 점이다. 더군다나 제목에서 뜻하는 ‘매질’ 사건은 소설의 중반부나 되어야 나온다. 소설의 초반부에는 주인공 가족의 생활 환경과 시답지 않은 일들이 나온다. ‘매질’에 대한 내용이 잠깐 언급되긴 한다. 지루하게 읽다가 ‘매질’ 사건이 나오는 중반부부터는 소설의 재미를 느꼈다.


주인공 로즈가 어디에서 배워온 말장난 - 밴쿠버 둘을 콧물에 튀겼네! 소금에 절인 잡놈 둘을 밧줄로 묶었네! -으로 시작된 플로와의 신경전이 발단이었다. 그것을 이복동생인 브라이언이 따라 할 것을 염려한 플로가 아버지에게 과장하여 로즈의 잘못을 일러바치고, 아버지가 집에 들어온다. 아버지는 처음에는 조용히 사건을 듣는 것 같더니 갑자기 벨트를 풀어 매질을 하는 등 딸 로즈에게 가혹할 정도로 폭력적인 모습을 보인다. 매질에는 자비가 없었다. 매질이 끝난 이후 플로가 로즈를 달래주려고 하지만 로즈는 받아주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집 앞에서 노인들이 했던 이야기들 들으며 어이없어하는 일상이 나오고, 더 많은 시간이 지나 로즈가 라디오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어떤 노인의 인터뷰를 들으며, 양로원에 입원되어 있는 플로의 모습을 생각한다.


소설의 구조가 명확하지 않아서 전체의 흐름을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중간의 매질 사건에 집중하면, 그 매질 사건의 발단과 절정 부분은 괜찮았다. 매질을 당하기 전에 로즈가 했던 행동과 생각들, 그것으로 인해서 플로가 표현한 행동들, 그것 때문에 벌어진 매질은 확실한 명분은 없지만, 명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플로와 그것을 토대로 서서히 움직이는 아버지의 모습. 매질에 어쩔 수 없이 굴복하는 딸 로즈. 이 부분에서 인간이 행동을 하기에 앞서서 어떤 사고를 갖고 그 사고체계가 움직일 수 있는지 관찰자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 하지만 소설의 제목에도 들어있는 장엄하다는 느낌은 전혀 받을 수가 없었다. 그저 아버지가 스스로 혼자 장엄하다는 착각을 했던 것은 아닐까. 모순적이게도 마치 어떤 명분 없는 사건에 가짜 명분을 만드는 것처럼.


2. 좋았던 부분


로즈는 아버지가 플로의 과장된 수사에 약간 반대하는 듯한, 약간 난감해하고 주저하는 듯한 기운을 감지한다. 하지만 거기에 기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오산이며, 그녀도 그렇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로즈가 안다는 사실, 그리고 로즈가 안다는 것을 아버지가 안다는 사실은 상황을 호전시키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가 발동을 걸기 시작한다. 딸을 한 번 쳐다본다. 처음에는 차갑고 시비를 거는 듯한 눈빛이다. 그 눈빛은 아버지의 판단을, 로즈가 얼마나 가망 없는 처지인지를 알려준다. 그러다 그 눈빛이 사라지며 다른 것이 차오른다. 옹달샘에서 낙엽을 치우면 물이 차오르듯이. 아버지의 눈에 혐오와 쾌락이 차오른다. 로즈는 그것을 보고 알아차린다. 분노가 그런 식으로 표현된 것뿐일까? 그녀는 아버지의 눈에 분노가 차오른다고 봐야 하는 것 아닐까? 아니. 혐오가 맞다. 쾌락이 맞다. 아버지의 얼굴이 풀어지고 변하고 점점 젊어진다. 그리고 그는 플로의 말을 막기 위해 한 손을 든다.


-. 내가 생각하는 소설의 중요한 단락이다. 이 단락에서 로즈의 아버지가 매질에 대한 명분을 나름의 논리로 만들고 있다. 그 과정을 로즈가 아버지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매우 구체적이고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3. 두 번째로 좋았던 부분


그들은 이 일을 놓고 주거니 받거니 다툰다. 겁에 질렸던 플로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며 자신감을 되찾는다. 그들은 언쟁을 하며 단계적으로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얼마 후, 말을 하는 것은 플로 혼자뿐이다. 아버지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말을 듣기 위해 요란한 흐느낌을 억눌러야 했던 로즈는 엿듣는 데 흥미를 잃자 좀 더 울고 싶지만 아무리 애써도 울음이 나오지 않는다. 이미 진정된 상태로 접어들어, 무자비한 폭행도 다 끝난 일, 바꿀 수 없는 일로 느껴진다. 이런 상태에서는 사건과 가능성들이 멋진 단순성을 띠게 된다. 선택은 자비로울 만큼 명백하다. 어물쩍 얼버무리는 말은 전혀, 조건을 붙이는 말은 거의 머리에 떠오르지 않는다. ‘결코’라는 단어가 갑작스레 확고한 권리를 얻는다. 그들과 결코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증오가 담기지 않는 눈길로는 결코 바라보지 않을 것이다.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을 벌할 것이고 끝장내버릴 것이다. 이러한 결의와 온몸의 통증에 감싸인 채로 그녀는 자기 자신도, 책임도 초월하는 묘한 편안함 속에 둥실 떠있다.


-. 매질 사건 이후 주인공 로즈의 행동과 생각이 구체적으로 묘사된 부분이다. 여러 문장들이 결코 가볍지 않고 밀도감 있게 로즈의 마음을 묘사해 주고 있다. 특히 폭행, 책임, 용서에 대한 로즈의 생각과 정리가 탁월하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