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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도살장>

by 부소유
커트 보니것의 장편소설


전쟁과 죽음을 다루고 있는 장편소설이다. 하지만 전혀 무겁지 않고 가볍게 서술하고 있다. 그래서 더 무섭다.


어떻게 보면 난해하고 어떻게 보면 쉽다. 그 이유는 시간과 공간이 계속 이동하기 때문이다. 시점은 주인공 빌리 필그림의 시점이지만 그의 어떤 트라우마로 인해 의식과 무의식이 계속 수시로 교차하고 있고 이 소설 역시 그 교차 방식으로 서술되어 있다.


빌리 필그림은 평범한 소시민이었지만 독일 드레스덴 폭격을 경험하고 전쟁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긴 인물이다. 그 장소에서 유일한 생존자로 남아 삶을 이어가지만 그는 계속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그중에 외계에 납치되었던 경험까지 떠오르며 그를 계속 괴롭힌다. 이러한 그의 정신분열증을 그대로 서술하고 있어서 이 소설의 서술 방식이 아주 특이하며 적응하기 어렵기도 하다. 하지만 문장 하나하나는 쉬워서 읽는 것이 어렵지는 않다. 그저 그의 의식을 따라가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다.


빌리 필그림은 생존자로 남았지만 전후에 검안사로 자리 잡고 살아가면서 나름 풍족한 삶을 이어간다. 검안사로 일하며 남들이 더 잘 볼 수 있도록 도와주지만 정작 본인은 계속 본인 스스로를 제대로 돌아보지 못한다. 그에게는 아직도 달의 표면 같았던, 전후 수습되지 않았던 상황들만 보인다.


이 소설 내내 미국인을 조롱하는 풍자도 계속 나온다. 블랙코미디 같은 유머러스한 상황이 계속 연출된다. 미국이 추구하는 대의명분은 없다. 전쟁의 명분도 없다. 그저 수많은 죽음만 발생할 뿐이다. 수많은 죽음 속에서도 주인공 빌리 필그림은 죽음을 의연하게 받아들인다. 자칫 냉소적이라고 보일 수도 있고, 차갑다는 기분도 든다. 계속 죽음을 목격하거나 경험하며 ‘뭐 그런 거지.’라고 수없이 반복한다.


이 소설은 기본적으로 반전(No war)을 말하고 있지만, 반사회적, 반기독교적, 반미국, 반유대적인 것도 함께 포함되어 있다. 전쟁과 죽음을 건조하고 냉소적인 어조로 체념하듯 계속 서술하고 있다. 이 가운데 빌리 필그림을 통해 허무한 삶을 무덤덤하고 탁월하게 표현했다. 인간의 불가항력, 바꿀 수 없는 상황, 억압된 자유. 그것들을 굉장히 건조하게 빌리 필그림의 의식으로 서술하고 있다.


전쟁은 어떤 이유에서건 있어서는 안 된다.


좋았던 부분 :


도살장에 도착했을 때 빌리는 마차에서 일광욕을 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기념품을 찾으러 다니고 있었다. 세월이 흐른 뒤 트랄파마도어인들은 빌리에게 인생의 행복한 순간에 집중하라고, 불행한 순간은 무시하라고- 예쁜 것만 바라보고 있으라고, 그러면 영원한 시간이 그냥 흐르지 않고 그곳에서 멈출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런 선별이 빌리에게 가능했다면, 그는 수레 뒤에서 햇볕에 흠뻑 젖은 채 꾸벅꾸벅 졸던 때를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 주인공이 생각하는 외계인들은 현재, 과거, 미래를 동시에 보는 능력을 갖고 있다. 그래서 주인공에게 좋은 순간만 보라고 조언을 해준다. 그렇게 그의 아주 보통의 행복의 순간을 떠올리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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