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장발남 24화

동창회

by 부소유

“야, 이번 토요일 고등학교 동창회 있다. 너도 올 거지?”


동창 단톡방에 메시지가 올라왔다. 졸업 25주년 기념 동창회였다.


망설였다. 작년에는 머리 때문에 안 갔었다. 올해는...


“김민수 너도 오는 거야? 작년에 안 와서 섭섭했어."


반장이었던 녀석이 따로 연락을 했다.


“어... 가야지.”


결국 참석하기로 했다.


토요일 저녁, 부페식 식당. 입구에서부터 긴장됐다.


“어서 와! 등록하고... 어?”


접수를 담당하던 친구가 나를 보고 멈췄다.


“민수 맞아?”


“어, 나야.”


“와... 머리가... 완전 딴사람이네?”


주변에 있던 동창들이 몰려들었다.


“진짜 김민수? 우리 반 반장?”


“머리 왜 이렇게 길어?”


“혹시 사업 망했어?”


“무슨 일 있었어?”


질문이 쏟아졌다. 예상은 했지만 부담스러웠다.


“그냥... 기르고 싶어서 길렀어.”


“에이, 그냥은 아니고 뭔가 있겠지. 스트레스?”


“중년의 위기?”


“이혼했어?”


상상력이 풍부한 친구들이었다. 곳곳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기 김민수 봤어? 완전 히피 같더라.”


“그러게. 잘 살던 애가 왜 저래?”


“회사에서 잘렸나?”


뒷담화가 다 들렸다. 하지만 모른 척했다.


“민수야! 여기 앉아!”


친한 친구들이 부르는 테이블로 갔다.


“야, 너 진짜 파격적이다. 어떻게 그런 용기를 냈어?”


“무슨 용기...”


“우리 나이에 머리 기르기가 쉽니? 대단해.”


그나마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건배사 시간. 동창회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25년 만에 모인 친구들! 다들 변했지만 정은 그대로네요!”


“특히 김민수! 넌 너무 변해서 못 알아볼 뻔했어!”


갑자기 내가 언급됐다. 모든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일어나서 인사해! 무슨 일인지 설명도 하고!”


싫었지만 일어났다.


“안녕하세요, 김민수입니다. 별일 없어요. 그냥 머리 좀 길렀을 뿐...”


“에이, 그것도 이유가 있겠지! 혹시 밴드라도 하니?”


“아니에요.”


“그럼 왜?”


“그냥... 한 번쯤 길러보고 싶어서...”


설명하기 민망했다. 빨리 자리에 앉고 싶었다.


식사 시간. 옆자리 친구가 조용히 말했다.


“사실 부럽다.”


“뭐가?”


“네가 그렇게 사는 거. 나도 하고 싶은 거 많은데 다 참고 살거든.”


“너도 머리 기르고 싶어?”


“아니, 그건 아니고... 그냥 뭔가 다르게 살고 싶어.”


그의 눈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화장실에서 또 다른 친구를 만났다.


“야, 솔직히 말해봐. 무슨 일 있지?”


“진짜 아무 일 없어.”


“그럼 왜? 우리 나이에 그런 머리는...”


“그냥 내가 원해서야.”


“회사는 괜찮아?”


“뭐... 그럭저럭.”


그는 고개를 저었다.


“이해 안 돼. 멀쩡한 놈이 왜...”


이해받기를 포기했다.


2차로 자리를 옮겼다. 술이 들어가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야, 민수야. 사실 멋있어.”


취한 친구가 말했다.


“나는 집사람이 머리 자르래서 잘랐어. 너처럼 살고 싶다.”


“그래?”


“응. 우리 다 똑같잖아. 똑같은 머리, 똑같은 옷, 똑같은 인생...”


씁쓸한 진실이었다.


“근데 넌 다르잖아. 그게 멋있는 거야.”


테이블 건너편에서 여자 동창이 다가왔다.


“민수야, 오랜만이야!”


고등학교 때 짝사랑했던 친구였다.


“어, 안녕.”


“머리 진짜 잘 어울린다. 젊어 보여.”


“고마워. 남편이랑은 잘 지내?”


“응... 너는?”


“나도 잘 지내. 근데 남편이 너 같았으면 좋겠어.”


“왜?”


“너처럼 자유로운 영혼이었으면. 우리 남편은 너무 틀에 박혀 있어.”


그녀의 말에 여러 생각이 들었다.


3차까지 가지 않고 먼저 나왔다. 집으로 걸어가는 길, 문자가 왔다.


“민수야, 오늘 와줘서 고마워. 사실 다들 너 부러워해. 겉으로는 이상하다고 해도.”


반장이었던 친구의 문자였다.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말했다.


“다들 내 머리 보고 난리였어.”


“그랬겠지. 어땠어?”


“피곤했어. 계속 설명해야 했고...”


“후회해?”


“아니... 오히려 더 확신이 들었어.”


“무슨?”


“이게 나라는 거. 남들이 뭐라 해도.”


아내가 웃었다.


“25년 만에 철이 들었네.”


25년 만의 동창회. 예상대로 내 머리는 화제의 중심이었다. 이상하다는 시선, 걱정하는 목소리, 부러워하는 눈빛... 다양한 반응이 있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한 친구의 말. ‘우리 다 똑같은 인생을 사는데, 넌 다르잖아.’ 맞다. 나는 다르다. 단지 머리가 길어서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을 선택했기 때문에. 45살의 우리들. 다들 비슷한 고민을 안고 살고 있었다.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 사이에서. 나는 운이 좋은 건지도 모른다. 작은 일탈이라도 할 수 있으니까. 다음 동창회 때는 어떤 모습일까? 더 긴 머리일까? 아니면...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건, 남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을 거라는 것. 25년 전 고등학생 김민수는 남의 눈치만 봤다. 25년 후의 김민수는 자신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것이 성장이 아닐까. 창밖으로 고등학교가 있는 방향을 봤다. 그곳에서 우리는 모두 같은 머리를 하고 있었다. 이제는 다르다. 그리고 그 다름이 나쁘지 않다. 아니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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