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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 있는 나날>

by 부소유
이 소설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본계 미국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초창기 장편소설이다. 1989년 출간.


여행에 관한 소설인 줄 알았다가 전혀 아니라서 놀랐다. 목차만 봐도 여행을 떠나는 프롤로그에서 시작해서 첫날 솔즈베리, 둘째 날 도싯주, 모티머 연못, 셋째 날 서머싯주 그리고 콘월주 마지막 여섯째 날 웨이머스 까지. 여기까지만 보면 누가 봐도 영국 서부를 여행하는 여행기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하지만 300페이지가 넘는 이 장편소설은 한 노인의 회고록이었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일생 동안 오직 하나의 직업, 한 장소, 한 사람에 대해 충성했던 인간의 자아성찰이었다.


주인공 스티븐스는 영국의 달링턴 홀이라는 대저택에서 35년간 달링턴 경을 모시는 집사였다. 하지만 불미스러운 일로 저택의 주인이 최근에 미국인 페러데이로 바뀌었다. 그 바람에 주인공 스티븐스는 저택과 같은 물건으로 취급되며 새로운 주인에게 이관되었다. 집사의 역할은 그대로 수행하고 있지만 동료와 주인이 바뀌면서 스티븐스가 그동안 경험했던 것들이 대부분 무의미하게 되어버렸다. 일류 집사들의 모임이었던 ‘헤이스 소사이어티’, 집사라는 역할에 맞는 품격 있는 행동, 그에 걸맞은 신사들의 영국식 농담까지. 모두 무의미하게 되어버렸다.


스티븐스는 그야말로 집사라는 직업에 몰입했다. 몰입보다는 몰빵에 가까울 정도로 집사라는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하기 위해서 피도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 혹은 맡은 역할의 완전한 수행을 위해서 주변에서 피를 흘리거나 눈물을 흘리는 것에 절대 눈을 돌리지 않았다. 함께 오랜 세월 일했던 총무 켄턴에게 절대 정을 주지 않고, 주인이 유대인을 껄끄럽게 생각한다는 이유로 그 밑의 직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고했으며,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도 집사 역할 수행에 절대 흔들림이 없었다. 심지어 그런 직업 정신을 아버지가 이해해 주실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 그의 주인이 갑자기 미국인 페러데이로 바뀌고 평생 처음으로 며칠 휴가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그 휴가 기간 동안 여행을 하면서 과거를 회상하고 현재를 고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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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처럼 살고 싶지만, 현실은 이방인의 뫼르소 처럼 살고 있습니다. 싯다르타 처럼 속세를 벗어나고 싶지만, 현실은 호밀밭의 홀든 콜필드 랍니다. 뭐 그럼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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