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진행된 지역 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의 특강은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영문학 교수가 AI를 논한다는 것이 다소 의외로 느켜질 수 있지만, 그는 기술이 아닌 인간의 관점에서 이 주제를 풀어냈다. 개량 한복을 입고 등장한 그의 모습처럼, 전통과 현대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인간의 의미를 성찰하는 시간이었다. 다만 강연 시작 시간보다 늦게 도착해 많은 수강생을 기다리게 했음에도 미안함보다는 태연한 모습이었던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이런 아쉬움은 뒤로한 채 강연은 도발적인 질문으로 시작되었다. AI는 생각을 할 수 있는가. 우리는 챗GPT를 사용하며 마치 그것이 생각하는 것처럼 느낀다. 빠르고 정확한 답변을 내놓고, 심지어 우리가 다음에 필요할 질문까지 제안한다. 그러나 철학자 존 설의 중국어 방 논증은 이에 반론을 제기한다. 중국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규칙집에 따라 중국어 질문에 완벽히 답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이 중국어를 이해한다고 할 수 있는가. 컴퓨터는 단지 계산을 할 뿐, 진정한 이해나 의식을 갖지 못한다는 주장이다. 잠수함이 수영을 할 수 있느냐는 비유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런 철학적 논쟁을 넘어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로봇 영상은 기술의 발전 속도를 실감하게 했다. 처음엔 네 다리로 걸어다니던 로봇이 이제는 인간과 거의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유연한 동작을 보인다. 자율주행차는 곧 상용화될 것이며, 의사 역할을 하는 왓슨과 변호사 역할을 하는 로스 같은 AI는 이미 실용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의사와 변호사라는 고도의 전문직마저 AI로 대체될 수 있다는 전망은 충격적이다.
교수는 대학 현장의 변화도 언급했다. 정부가 모든 국립대에 AI 과목을 필수로 배치하라는 지침을 내렸고, 학생들은 이미 과제를 AI로 해결하고 있다. 이를 막을 방법이 없기에 오히려 AI 활용 능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교육이 전환되고 있다. 시험도 대면으로, 실시간으로 치러야 하는 원시적 방법으로 회귀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졌다. 우리가 만든 기술 환경에 우리 스스로 적응해야 하는 역설적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포스트휴먼 시대라는 개념은 더욱 깊은 사유를 요구했다. 호모 사피엔스로 살아가는 마지막 시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은 섬뜩하면서도 현실성이 있다. 인류는 수백만 년 동안 진화해왔지만, 지난 백여 년간의 변화는 이전과는 차원이 다르다. 자연환경에 적응하며 천천히 진화하던 인간이 이제는 자신이 만든 기술 환경에 급속도로 적응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휴대폰 없이는 길을 찾지 못하고, 가족 전화번호조차 외우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이 이를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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