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을 다닌 첫 회사를 떠나기까지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후회 없는 결정일까? 더 나은 회사, 내게 맞는 회사를 잘 찾을 수 있을까? 새로운 곳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후회의 기회비용을 생각해 봤다.
배울 점 없는 곳에 남아 도태되더라도 안정적인 수입에 만족할 것이냐 vs 불안정하더라도 성장해 가며 새로운 도전을 할 것이냐.
32살이었던 당시 더 시간이 지나면 더욱더 옮기기 힘들 거라고 생각이 들었고 내겐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결론으로 나중에 덜 후회할 것 같은 선택을 했다.
퇴사를 결정하고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있다.
-갈 데는 정했어?
-이직해서 그만두는 거 아니었어?
-갈 곳 알아보면서 퇴사한다 하지 왜 퇴사를 먼저 해~
우선 회사에 정뚝떨도 있었거니와 6년을 누구보다 쉼 없이 일에만 매진해 왔던 터라 휴식이 필요했다. 재직 중일 때도 경쟁사에서 스카웃 제의를 받았었기에 알게 모를 자신감도 있었다.
'어디든 못 가겠어, 일단 쉬고 천천히 생각하자.'
결론부터 말하면 6개월을 백수로 지냈다. 파워 J인 나도 이렇게 오래 쉬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처음으로 큰 액수를 만져봤던 퇴직금은 온데간데 없었다. 말 그대로 빈털터리 백수였다.
쉬는 반년동안 정말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았다.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그동안 못 갔던 해외여행도 가고, 바쁜 회사생활로 연락이 끊겼던 친구들을 만나고.
흐르는 대로 몸을 맡기며 뇌에 쉼을 주었다. 딱히 생산적인 활동은 하지 않았다.
일종의 보상심리였던 것 같다. 6년을 앞만 보고 달려온 내게 이 정도의 나태함과 돈지랄은 응당하다고 생각했다.
'어? 벌써 9월이네?'
백수 4개월 차 때쯤부터 생각보다 길어진 휴식에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저 안부를 묻던 전 직장 동료의 연락도, 슬슬 갈 곳을 알아봐야 되지 않겠냐는 절친의 충고도 점점 부담으로 다가왔다. 집에서 있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가족의 눈치를 보는 시간도 늘어나게 됐다.
큰딸, 산책 갈까?
쉬는 동안에도 빠짐없이 한 건 강아지 산책이다. 어김없이 산책 나갈 준비를 하던 내게 웬일로 아빠가 같이 가자고 제안했다. 집에서 말수가 없는 편이라 나눌 얘기도 그리 없고 내심 현 상황에 대해 말할 것 같아불편한 마음으로길을 나섰다.
어차피 늙을 때까지 일할 건데 더 쉬어. 더 많이 놀러 다녀.
요즘 불안했던 내 마음을 아빠는 읽었던 걸까.
산책 후 집 앞 편의점에서 맥주 한 캔 씩 마시며 잠시 쉴 때, 아빠가 이직 관련하여 처음으로 꺼낸 말이었다.
그동안의무거운 마음이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어쩌면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었지싶다.
'그래! 나 지금 재충전 중이었지!'
아빠의 응원 덕분에(?) 그 뒤로 2개월을 더 쉬어 총 반년의 백수생활을 했다. 내 통장에서 처음 보는 액수였던 퇴직금도 남지 않고 정말 푹 쉰 기억 말고 남은 게 없었던 기간이었다.
하지만 다시 되돌아가도 똑같이 했을 만큼 후회가 남지 않는 6개월이었고,푹 쉰 덕분에 이직한 회사에서 에너지 있게 일할 수 있는 원동력을 얻은 계기였다고 생각하고있다.
주변에 퇴사를 결정하고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아빠가 해준 말씀을 해주곤 한다.
"어차피 늙어 죽을 때까지 일할텐데 진짜 걱정하지 말고 푹 쉬고 재충전하세요. 은퇴 전에 언제 우리가 이렇게 쉬어보겠어요."
혹시 나처럼 앞만 보며 달리다 이직 준비 없이 퇴사를 결정한 분들께 이 말을 전한다. 이직은 나와 맞는 회사가 있을 때 천천히 결정해도 늦지 않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