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부캐스트 Oct 03. 2023

생일을 어떻게 보내고 싶나요?

Part19. 결혼 후 처음 맞이하는 생일

는 2~3년에 한 번 꼴로 추석명절과 함께 생일을 맞이한다. 덕분에 어렸을 땐 명절에 모인 친척들과 케익을 자르며 푸짐한 생일상과 함께 용돈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결혼 전에는 보통 생일 전주 주말에 가족 외식을 하고 당일 아침엔 엄마가 끓여놓은 미역국을 먹고 출근을 했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가족 생일이 있는 날은 자연스레 칼퇴 후 모여 케익을 함께 자르며 생일을 마무리했었다.


올해는 많은 것이 달라졌다. 바로 결혼 후 처음 맞는 생일이기 때문!


이번엔 생일이 추석 황금연휴와 맞물려 있어 연휴 전 연차를 쓰고 생일기념 겸 남편과 제주도 여행을 가기로 했다.


9월의 제주, 여름이었다.

9월의 제주는 아직 여름 공기였지만 연휴 전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도 많지 않았고 2박 3일 내내 날씨가 너무 좋았다. 덕분에 매번 날씨가 도와주지 않아 못 갔던 우도에 가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돌아오는 길 면세점에서는 그동안 갖고 싶었던 밝은 색의 손목시계를 생일 선물로 받았다. 마음은 가볍고 손은 무거워진 생일맞이 힐링 여행이었다.


생일 당일. 가족과 떨어져 보내는 생일이 처음이기도 하고 추석 겸 친정 식구들과 오랜만에 외식 약속을 잡았다.



방문예약만 가능하다는 용산 유명한 우대갈비집에 한 시간 일찍 방문했지만, 당일 예약은 이미 끝났고 취소 대기만 가능하단다. 가족과 꼭 먹어보고 싶었는데 예약이 실패하니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결국 예약 취소자가 없어 동생이 찾은 근처 다른 식당으로 가서 식사를 했다. 오히려 플랜비였던 식당이 서비스도 좋고 맛이 매우 좋아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삼각지역 아나바 강추!)


사실 예약 실패 때문에 기분이 안 좋았던 게 아니었던 것 같다. 매년 생일날 당연시 여겨지던 미역국이 올해엔 없었기 때문.

내심 결혼 후 처음 맞는 생일이라 기대를 했었나 보다. 느즈막히 늦잠을 자고 친정과 점심 약속이라 아침을 먹을 시간이 없었음에도, 눈떠보니 남편이 끓여놓은 미역국이 눈앞에 있는 것을 잠깐 상상했었다.


우대갈비를 든든히 먹은 덕에 저녁밥은 패스하기로 하고 남편과 케익만 사들고 왔다. 초 수를 하나라도 줄여보려 만나이로 초를 꽂고, 남편의 생일축하 노래를 들으며 소원을 빌었다.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케익을 먹으며 그렇게 나름 결혼 후 첫 생일날을 즐겁게 마무리했다.



'응? 무슨 냄새지?'


다음날도 연휴라 알람 없이 자고 있는 와중에 어디선가 고소한 냄새가 나 저절로 눈이 떠졌다. 옆에 있어야 할 남편이 없다. 열고 잤던 방문도 닫혀있고 문 밖에서 뭔가 달그락 소리가 난다. 엇 설마?

"여보~~"

나의 부르는 소리에 남편이 놀란 눈으로 들어왔다.

- " 벌써 깨면 안 되는데.. 너무 시끄러웠지?"


남편표 첫 생일 밥상 (맛있어서 두그릇 먹었다)

알고 보니 남편은, 생일 당일엔 친정과 점심 약속이니 아침을 먹기엔 부담스러울 것 같아서 애초부터 다음날 미역국을 끓일 생각이었다고 했다.


"미역 밖에 없을 텐데 고기는 어디서 났어? 미역은 또 어떻게 찾았대?"

- "소고기는 아침에 마트 가서 사왔고 미역은 안그래도 어딨는지 몰라서 다 열어보고 찾았지롱"


어제 잠시 서운했던 마음에 놀란 마음이 더해져 나도 모르게 울컥해 눈물이 났다. 10년 연애기간 동안 남편이 성공한 첫 서프라이즈여서 더 감동이었던 것 같다. 늘 뭔가 나 몰래 서프라이즈를 준비할 때마다 눈치챘지만 모른 체하고 놀란 척했었는데.. 이번엔 진짜 아무런 낌새를 채지 못했었다. 이래서 서프라이즈에 사람들이 울기도 하는구나.



사람마다 성향은 다르겠지만, 나는 원치 않는 선물을 서프라이즈로 받는 것을 썩 좋아하진 않는다. 그 사람이 갖고 싶던 것, 또는 내 돈으로 사긴 그렇지만 남에게 받으면 기쁜 것이 선물이라고 생각하는, 굉장히 현실적인 타입이다. 그래서 가족이나 친한 친구한텐 미리 갖고 싶은 것을 얘기해 두는 편이다. 이왕이면 선물 주는 사람, 받는 사람 모두 좋은 게 좋은 거니까.


가만 생각해 보니 남편은 이번 생일에 내가 원하는 걸 다 해줬다. 가고 싶은 제주 여행에, 친정과 만남에, 갖고 싶던 손목시계에, 직접 끓인 미역국까지. 내겐 완벽한 생일이었다. 내 성향을 너무 잘 아는 남편, 오랜 연애기간이 이럴 때 참 좋구나.


당신은 어떤 생일을 보내고 싶나요?

원하는 것을 받길 원하던 서프라이즈를 좋아하던 본인이 어떨 때 행복한 생일이라고 느끼는지 생각해 보고, 내 사람에게 성향을 공유한다면 더 즐거운 생일이 되지 않을까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은 운명을 믿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