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제를 열심히 했다.
코로나가 터지고 한국에 8월경 돌아와 이제 정실이 슬슬 돌아오기 시작했다. 아직까지 가슴의 두근거림이 종종 올라올 때가 있지만 많이 나아졌다. 그리고 수업을 다시 들으면서 심리에 대해 서술하는 기회가 있었다. 과제를 떠나서 내 감정을 절제하지 않고 써 내려가다 보니 신세 한탄 글이기는 하지만 내 내면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분명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적 기억 혹은 특정 시기의 과거의 자신과 비교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면 그 원인과 결과를 써보는 것이 자신을 이해하는데 큰 밑거름이 된다.
3주 차: 나의 심리·사회적 문제들이 어린 시절의 경험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을까?
내가 스트레스 상황이나 위기에 처할 때마다 반복적으로 되풀이되는 마음속의 부정적(파괴적)인 경험이 있는가? 그리고 그 마음속 부정적(파괴적)인 경험은 나의 어린 시절의 경험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가? 에 대하여 생각하고 써 보시오
(선택 한 리스트)
1] 나는 왜 걸핏하면 잘못된 행동을 하고, 그때마다 자책감에 시달리며 실망감을 맛보는 것일까?
3] 왜 매번 후회하면서도 충동적인 행동을 하는 것 일까?
4] 왜 모든 일을 내손으로 완벽하게 처리하려고 자신을 강박적으로 몰아치는가?
5] 나는 왜 언제나 착한 사람이 되려고 하는 것일까?
24개의 리스트 중 너무나 많은 항목에 해당하는 것을 깨달았다. 특히나 독일에서 코로나 판데믹이라는 상황 속에서 크나큰 무기력감을 느낀 후라 더욱더 많은 리스트에 해당한다 생각한다. 몇 개월간 혼자 방 안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가장 날 괴롭힌 것은 나를 자책하는 원망의 목소리였다. 언제나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아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다. 코로나라는 특별한 상황이었음에도 교환학생 시간을 알차게 보내야 한다는 의무감, 더욱이 늦은 나이에 복학해 타인에게 그나마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무의식적 생각이 더욱더 시간에 목맸다. 그렇기에 시간을 기록하고 나의 좋지 않은 버릇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줄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역설적으로 긴장감을 느끼거나 무기력감을 느끼면 핸드폰을 켜고 커뮤니티 사이트를 확인했다. 중독에 가까웠다. 몇 년을 이 문제로 골치 아파했는데 이것 하나 고치지 못하냐며 자학하던 버릇이 결국 곯아 터지고 터져 다 포기한 상태가 되었다. 그렇기에 나에 대한 죄책감과 무기력감을 잊고자 더욱더 스크린으로 향했다.
이 좋지 않은 상황을 반복하게 만든 것은 자기 파괴적인 성향이었다. 완벽하지 않은 하루 몇 번의 실수에 스스로 내리는 가혹한 처벌은 내 자존감은 너덜너덜해졌다. 지금 어린 시절 형성된 마음속 내면의 아이에 도대체 어떠한 문제가 있는지 생각해봤다. 어머니가 일찍이 돌아가시기는 했지만, 그에 대한 부족한 사랑은 누나, 동생, 할머니, 아버지, 할아버지로부터 채워왔다고 생각한다. 다만 어린 시절 아버지를 떠올리면 아주 강렬하게 남아 있는 기억이 있다. 아버지의 조건적 사랑에 아픈 기억이다. 어린 시절 그림을 좋아해 그림 낙서를 하던 중 아버지가 대뜸 내 뺨을 후려치고는 "넌 천재도 아닐뿐더러 그림에 재능이 없으니 그리지 말아라" 그 한마디가 아직도 내 마음속 깊이 남아 있다. 가정이 어렵던 시절 아버지가 무심히 컴퓨터를 하는 뒷모습을 보면서 난 저러지 않겠다 다짐했다. 그래서일까 지금도 내가 원하는 목표 꿈꾸는 것에 대해서는 아버지 앞에서 도저히 이야기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아버지로부터 인정받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가 존재했다. 그렇기에 고등학교 시절 공모전에 나가고 그림을 그리고 상금을 타며 내 존재 가치를 인정받고자 했다. 또 한편으로는 그 아버지의 목소리로부터 독립하고자 했다. 내 인생을 나 스스로 개척하고자 무리한 시도들을 많이 했다. 가족들을 속이고 아일랜드로 가 봉사 활동을 하고 미대로 진학하고자 서울에 올라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입시학원에 다녔다. 하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과 죄책감 더욱 커지고 모교로 돌아왔다. 그리고 인정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살 수 없다는 것을 대신 그저 내게 주어진 환경을 최대한 이용하자는 마인드로 살아왔다. 또한, 여전히 그놈에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 때문에 더욱더 장학금과 성적에 매달린 것 같다. 장학금과 성적을 통해서 조금씩 가족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독일에 교환학생까지 가게 되면서 확실히 겉으로 보기에는 자존감이 높아진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코로나라는 충격에 내 내면 어린아이가 밖으로 나와 발가벗겨졌다. 불안과 초조함을 느끼고 죄책감을 느끼는 경우가 잦아졌다. 앞으로 나아가고 있지 않다는 불안한 생각 때문에 꾸준히 그려오던 그림도 손을 놔버렸다. 분명 스스로가 강한 사람이라 생각했지만 이젠 코로나 이전의 나 자신과 비교하는 버릇이 생겼다. 난 열정 넘치고 다양한 활동도 하면서 잘 해왔는데, 왜 지금의 난 이러할까? 이는 분명 과거로부터 형성되어온 가치체계가 흔들리기 시작하면서이다. 즉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제대로 분리해 내는 능력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아니, 앞서 말한 어머니의 사랑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보면 사랑에 대한 부재가 존재했던 것 같다. 그래서 더욱더 권위로 이루어진 학교라는 공간 속에서 잘 해내고자 했다. 선생님의 칭찬에 목말라했다.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을 도와드리기 위해 교실에 남아 청소를 하고 칭찬을 받으며 보람을 느꼈다. 착한 친구, 착한 학생, 배려심 넘치는 아이. 결국, 이러한 성향 때문에 독일 교환학생 때 학교 수업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는 죄책감에 큰 부분을 차지했다.
결국 뒤돌아보면 누군가의 사랑을 절실히 원했지만 미숙하기 짝이 없다. 과거의 모습에서 벗어나 성장했다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부터 거의 극복했다 생각했다. 아니었을 뿐이다. 다만 이번 수업으로부터 절실히 느꼈다. 과거의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 태도에 따라서 현재 그리고 미래가 달라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