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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개 May 16. 2021

함께하지 못함에 있어

공유된 감정을 더는 공유하지 못할 때

며칠 전 여러 가지를 뒤적거리다가 찾아버렸다. "찾았다"라는 표현보다 "찾아버렸다"라는 표현이 온당하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나를 미워하던 사람과 한때 공유했던, 예정된 슬픈 이야기가 정말 사실이 되어버렸다. 그땐 심심하게 같이 울었는데, 하며 잠시 회상에 빠졌다.

<어바웃 타임 (2013)>의 빌 나이는 아버지 역할을 그 누구보다 잘 소화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행복하다. "더할 나위 없이"라는 표현은 어쩌면 오늘을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나를 이해하는 사람과 이해해주는 여럿 환경들. 내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하더라도 이들 대부분은 나를 넘겨짚지 않으니 나는 충분히 행복하다. 그럼에도 이 그릇된 욕심은, 끝없이 이어져, 나를 미워하는 사람까지도 연결되어서, '내가 조금만 더 잘했더라면 우린 더 끈끈해지지 않았을까'라는 생각까지 이어진다.


 과거는 과거로, 이제는 현실에 충실하기도 바쁜 삶이 돼버렸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기로 오늘과 약속했지만 슬픔으로 공유된 그 순간들은 오늘의 회상 시간을 남겨주었다. 나는 늘 기쁜 일은 함께하지 못하더라도 슬픈 일은 함께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미워하는 감정이 있더라도 슬픔 앞에서는 크게 감췄다. 하지만 너는 그러지도 않았고 내가 그럴 사람도 못 되었겠지. 알지만, 안다 해서 바뀌는 건 없겠지만, 그도 그럴듯하게 슬플 뿐이다.


 복잡 미묘한 감정은 참으로 헛되다. 결국은 의미 없는 참회인 거늘, 너는 여전히 나를 죽일 듯이 미워할 텐데도, 나는 해탈한 듯 굴어본다. 공평하게 나도 오늘을 슬퍼할 터이니 너에게 조금의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를 담아본다. 인간 대 인간으로서, 나는 여전히 너를 존중하고자 한다. 이 말들이 존중이 아니게 느껴질언정, 나는 정말 그러하다. 선의든, 악의든, 모든 걸 다 저버리고 슬픔을 심심하게 위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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