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경민 Feb 08. 2022

간절하면 왠지 모르게 센 척하게 된다

월급쟁이는 응가만 싸도 월급이 나온다는 우스개 소리도 있지만 그게 보통 응가여야말이다. 먹여살려야 할 입은 무려 셋. 목구멍이 포도청이란 식상한 말이 절로 떠오르는 요즘. 코로나 시대에 직장이 있는 것도 어디겠느냐만 마음이 급한 나는 또 할 일이 없나 오늘도 스크롤을 내리고 있었다. 사실 스크롤을 내리게 된 것은, 가능만 하다면야 디자인 일을 외주로 받으면 좋겠지만, 나의 협소한 인간관계와 믿지 못하는 거래처들, 결정적으로 나 자신의 멘탈을 믿을 수 없어 함부로 일을 받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고민하다 아예 다른 분야의 사이드잡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래서 오늘도 스크롤을 내리게 된 것이다.


열심히 스크롤을 내리다 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직종에 그것도 주말에 구인 공고가 났다. 내 나이 마흔. 알바라도 해보려면 사장님보다 나이가 더 많고, 운좋게 사장님보다 어려도 마흔이라는 나이가 쉬워보이는(?) 나이는 아니기에 쉽게 채용될 수 없을 거란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그래도 일단 도전은 해보는 게 좋겠다 싶어 이력서를 열고 자기소개서를 고치기로 했다.


그동안 북디자인 일을 잡을 때 작성했던 이력서나 자기소개서는 내 경력을 간결하게 그리고 자신감있게 쓴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다르다. 한번도 관련 경력이 없었고, 나의 이력서도 참 소소하기 짝이 없다. 더군다나 애엄마. 이런 나를 누가 주말이라도 채용해줄까. 읽을 사람은 아직 보지도 않은, 이런 이력서를 쓰다보니 나 자신의 자존감이 급속도로 하락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럴수록 내가 쓴 글은 그런 나의 자존감의 위치와 영 딴판이었다. 담백함이란 1도 없이 스스로를 부풀리기에 바빴다. 적수를 만난 두꺼비가 몸을 크게 부풀리는 그런 느낌이랄까(이를 베이츠 의태라고 한단다. 베이츠 의태[Bates擬態]: 경계색이나 주위의 빛깔로 제 몸빛을 바꾸어 자신을 보호하는 현상을 이른다) 자꾸만 글을 다시 덜어내고 덜어내고 a4 한 장도 안 되는 글을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나는 다시 한 번 나에 대해 사력을 다해 무관심해하며 글을 썼다. 나에 대해 잘 모르지만 이런 사람이 있어요~ 툭! 정도의 느낌이 들게.


대략 글을 작성하고 이메일을 보냈다. 결과와 상관없이 무언가에 문을 두드리는 메일은 항상 긴장이 된다. 연락이 오기 전 며칠 동안은 몇 번이고 스스로를 자책하기도, 격려하기도 여러 번. 도전을 향한 이 작은 도전에도 멘탈은 소용돌이친다.


이 순간에 갑자기 누군가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와 갑을관계가 되어버린 *모씨의 얼굴이었다. 그 역시 사력을 다해 모른 척. 하지만 얼굴에는 긴장한 모습이 살짝 엿보였다. 혹시 안한다고 하면 어쩌지 라는 표정. 사실 내가 뭐라고 아쉬울 것은 없었겠지만, 아무 것도 없는 ‘나’란 사람에게도 거절당할까봐 조금은 초조한 모습이 엿보였다. 하지만 그건 나도 마찬가지. ‘누구의 센 척이 더 잘 안보일까’ ‘누가 더 자연스러워보일까’의 대결이었다. 그날의 대결은 ‘나’의 승리였겠지만 다른 장소 다른 순간에서 나는 어떨까. 자연스럽게 센 척하고 앉아 있을 수 있을까.



후일담.

다행히 나의 제한된 조건에도 알바 면접은 잡혔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본 면접은 생각보다 화기애애했다. 모르는 이와의 수다는 색다른 의미에서 재밌었다. 그런데 우리는 결론을 알고있었다. “아하하 그런데 우리는 안 될 거 같아요. 기회가 있다면 언젠가 다음에!” 언젠가 있을지도 모를 그날을 기약하면 안녕을 고했다. 대화는 즐거웠고 내게는 ‘사람은 역시 많은 경험과 대화가 필요하다’는 교훈을 남겨줬다. 이렇게 오늘도 한 수 배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