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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다. 고맙다

by 김경민

돌아가신 할머니가 예전에 입버릇처럼 말씀하신 “고맙다. 고맙다.”라는 말을 지금 내가 하고 있다. 들을 때는 꽤나 열받고 (“할머니, 뭐가 고마워. 다 따지고 들어도 모자란데”) 싶었지만 절로 입에서 나오는 이 말을 멈출 수 없다. 물론 상황에 따라 다르고, 받아들이는 나의 자세가 달라졌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이 말이 진실이므로 어쩔 수가 없다.

매일 쓰는 일기의 말미에는 꼭 이 말이 들어간다. “참 고맙다. 네가 우리를 키운다” 너무 뻔한 말이지만 이건 아이에게 하는 말이다. 아이를 낳고 키우기까지 이렇게 많은 감정이 들 줄은 몰랐는데, 세상 부정적인 나란 사람이 이제 ‘감사’한 마음까지 드니 아이가 나와 남편을 성장시키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아이는 태어난 순간부터 모든 것이 새롭고, 또 끊임없이 반복해 나가며 배우고 있다. 그 과정에서 어른도 쉽지 않은 많은 도전과 좌절, 희망을 보여줘서 나 또한 그에 힘을 받기도 한다. 그중 하나 인상 깊었던 것은 ‘사과’와 ‘인정’이었다.


어느 날, 아이와 아이 아빠가 작은 말다툼을 했다. 말다툼이라고 해봤자 훈육을 빙자한 지적질이었고 예상대로 아이는 폭주하며 반응했다. 아이는 분을 참지 못했고 나는 둘을 중재했다. 아이도 건성건성 사과를 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 잠시 내가 자리를 비운 순간, 설거지를 하는 아이 아빠에게 뒤에서 말을 걸었다고 한다.


“바로핑, 미안하다”


“응? 아빠한테 말하는 거야?” 아이 아빠가 대답하자


“아니~ 난 바로핑한테 말하는 거야. 나는 하츄핑이고”


그래 현실세계에선 사과 못하겠지만 핑들의 세계에선 충분히 할 수 있겠지… 싶어 아이 아빠도


“아빠도 미안해~”라 하니


“아니, 아빠 아니고 바로핑이라니까! 바로~”


덕질하는 사람은 알 것이다. 세계관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이는 그 세계관을 현실로 끌고 와서 사과를 했다. 비록 리얼리티 세상에선 할 수 없지만 그렇게라도 사과가 하고 싶었나 보다. 둘은 그렇게 화해하고 하하 호호 웃으며 안았다. 자리로 돌아온 내가 봤을 때 그들은 사랑에 빠진 한쌍의 개구리들이었다. 하하 호호 웃음의 노래가 끊이지 않았다. 그들의 웃음 가득한 노래처럼 아이도 리듬 속에 사과와 인정을 배워간다. 그리고 나도 배워간다. 진짜 고맙다. 딸아, 네 덕에 나도 배운다. (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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