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기로 마음을 먹고 한동안은 글이 잘 써졌다. 물론 그 글이란 게 대단히 좋은 글도, 대단한 조회수를 기록한 것은 아니었지만, 언제나 ‘해야지’와 ‘할 수 있을까’의 기로에서 왔다 갔다를 반복한 나로서는 대단한 발전이었다. 앞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냥 써내려 갈 수 있다는 것. 그 사실 자체가 기쁨이었고 묻혀 있던 나 자신에 대한 발견이었다. 그런데 그런 내가 글이 잘 안 써졌다. 하루에도 몇 번을 브런치에 올릴 글을 올리기도 했던 나인데, 이상할리만큼 안 써지고 이상하게 말이 안 되는 것들이었다.
생각해보니 주제가 문제였다. 내 안에 글 쓰는 유전자는 부정적인 감정을 이기지 못하는 것 같다. 말로는 풀 수 있어도 글자로는 풀 수 없었다. 내 안에 솟아져 나오는 기분 나쁨을 분출하고 싶어도 씩씩거리기만 할 뿐, 말로 형언할 수 없었다. 그래서 욕이라는 게 생긴 걸까 싶을 정도로.
10여 년도 훨씬 전의 어느 날, 지금은 원수가 된 누군가가 내게 그런 말을 했다.
“**가 되고 싶다고 했죠? 그럼 그 마음을 말로 내뱉지 말고 마음속에서 잘 키워봐요. 물을 주고 싹을 틔워 조심히 키워서 내놓아요. 그렇게 말로 내뱉고 다니면 그게 먼지가 돼서 공중에 훅 날아가 버려요. 날아가지 않게 잘 잡아둬요.”
원하는 바가 있으면 말로 내뱉고, 스스로에게 자주 상기시켜야 된다고 생각했던 어린 날의 나에겐 꽤나 센세이션한 말이었다. 뒤늦게 생각해보면 ‘너 나처럼 되고 싶구나. 나처럼 되기 어려운데. 그럼 일단 말 말고 열심히 해봐. 그럼 나처럼 될지도 몰라’의 다른 버전이라는 것은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꿈(또는 소망)을 말이라는 것에 담아 뱉는 순간 공기 어딘가에 떠나보내지 말고, 소중히 다뤄야 한다는 나름의 교훈을 얻은 대화였었다.
누군가가 했던 그 말을 이제는 나의 식으로 다시 말하고 싶다.
“무언가가 되고 싶다면 또는 이루고 싶은 바가 있다면, 그건 말로 형언할 수가 없다. 그저 내 몸이 내 손이 그 흐름을 따라갈 수밖에. 그러나 내가 원하지 않는 것, 기분 나쁜 것은 그 흐름에 맡기면 내 모든 것이 다 휩쓸려 간다. 그것은 그저 한마디 불평의 말로 날려버리고, 나는 나의 인생을 다시 살자.”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다시 마음이 편안해지고 글이 써졌다. 역시 사람은 좋아하는 것을 말하고 풀어야 썰이 풀린다. 나를 기분 나쁘게 하는 것들은 글로 박제하지 말고(그럴 가치를 부여하지 말고) 그냥 말로 날려 보내자. 그래도 말은 꼬리가 길다는 말이 있으니 적당히 날려 보내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