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제작 수업을 듣고도 전자책을 못 만드는 이유
10여 년 전, 나도 이제 디지털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겠어!라는 포부를 갖고 모 센터에서 진행하는 전자책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약 3시간 분량의 5번 정도의 강의였던 것 같다. 이 수업만으로 과연 전자책을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품으며 수업을 들으러 갔다.
수업이 시작되고 강사분께서 입을 여셨다. “지금부터 제가 하는 것을 일단은 잘 보세요. 이게 앞으로 우리가 배울 것의 다입니다. 이 수업을 매번 하지만 이 수업을 듣고도 전자책을 실제로 만들 수 없는 분들이 90퍼센트입니다. 그만큼 많은 복습을 하셔야 해요”
아니, 처음부터 잘 못할 거니 귀를 단디 열으라는 강사님의 말씀이 이해가 되지는 않았지만 일단 따라 하기로 했다. 강사님은 얼마 간 열심히 시연을 하시고 다시 말씀하신다.
“자 보셨죠. 이게 답니다” 웅성대는 학생들. “이게 다라고요?” “네, 이게 다예요. 전자책이라는 특수성상 많은 기능은 필요가 없어요. 읽을 수 있는 파일을 만드는 것. 그게 전자책을 만드는 것이에요. 읽는다는 행위 자체가 변하지 않는 한 이 이상의 기술 발전은 어려울 거예요”
그렇다. 시대에 맞춰 그걸 구현하는 기술은 달라질 수 있어도 인간이 기록하고 그걸 책이라는 것에 담는 그 행위. 그리고 그것을 읽는 단순한 행위가 변하지 않는 이상 이 이상의 기술이 필요 없다는 뜻이다.
순간 그 10년 전의 10년 전의 한 기억이 떠올랐다. 졸업을 하기 위해 전공을 정해야 되는 순간이 왔다. 고를 수 있는 경우의 수는 ‘종이책’과 ‘전자책’. 아무래도 어색하고 생경했던 ‘전자책’ 전공보다는 ‘종이책’ 전공을 선택했던 나는 ‘전자책’ 전공을 선택한 친구들의 작업물을 어깨너머로 지켜볼 수 있었다.
그때의 기술은 한 권의 책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작은 홈페이지 시디롬에 담은 것에 가까웠다. 그때의 기술과 지금(10년 전)의 기술도 모양도 많이 달라졌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전자책이든 종이책이든 한 땀 한 땀 설정에 설정을 얹어 최종 책이라는 물성을 만든다는 것이다. 그것이 어디에 담기냐에 따라 프로그램만 다르게 할 뿐.
그리고 교수님의 한마디가 또 생각났다. “나 때는 컴퓨터가 어딨니? 쿽(199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 한국 출판계에서 DTP-DeskTop Publishing-에 가장 많이 사용되었던 레이아웃 프로그램)이 어딨어? 나는 사진 식자(사진 식자기를 사용해 인쇄용 글자나 기호, 괘선, 패턴 등을 작성하는 방법. 활자 자모에 해당하는 네거티브 글쇠판을 투과한 빛이 렌즈를 통하여 드럼 안에 있는 인화지 또는 필름에 한 자씩 차례로 투사하여 촬영된다)로 시작한 사람이야”
그런데 이 말은 또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사진 식자가 어딨어. 난 활자 조판 한 사람이야(실제 컴퓨터 조판 시스템이 도입되기 전엔 미리 만들어진 활자를 선별해 판을 짜는 사람들이 따로 있었다)”
그렇다. 지금은 2022년 그럼에도 책을 만드는 행위는, 그것이 무엇이라도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여야 한다. 비록 그 과정을 들이는 시간은 줄일 수 있더라도 그 과정은 생략하지 못한다. 전자책이라고 각주가, 미주가, 참고문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 다시 다 적용해 주어야 한다. 어찌 보면 21세기에 맞지 않는 이상한 레이아웃(?)에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다음 장에서 다시 자세히 말해보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