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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민 May 05. 2022

추억의 올드보이 떡볶이

2003년 <올드보이>라는 영화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었다. 그 떠들썩한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그중 하나는 사람을 15년 동안이나 가둬놓고, 온리원! 한 가지 메뉴만 먹인 설정이 나름 센세이션(?)했다. 그보다 몇 년 전에 나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때는 y2k의 공포가 있던 세기말의 2000년쯤. 그동안 가정주부로만 일했던 엄마가 생계에 뛰어들게 되면서부터다.


한 여름의 시작과 함께 시작된 방학. 그것도 아침은 온 가족이 둘러앉아 먹고, 삼시세끼 다른 반찬을 먹었으며, 식사 후 후식까지 챙기시던 엄마는 다 큰 자식의 식사를 방관할 수 없었다. 때마침 남편은 일에 바빴고, 아들은 군대에 갔으니 가능한 일이었겠지만, 엄마에게 딸의 식사를 챙기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고 또 우선시되면 하루의 루틴이자 미션이 되었다.


그런 엄마도 레퍼토리가 떨어졌는지 하루는 떡볶이가 나왔다. 여기서 엄마의 떡볶이 맛을 말하자면, 건강식을 추구하는 평소 엄마의 성격대로 No 설탕, No 소금. 떡볶이이되 떡볶이 맛은 아닌,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알 수 없는 심심하면서도 또 떡볶이가 아니라고는 할 수 없는 그런 맛과 색, 질감을 가졌었다. 떡볶이계의 평양냉면이 있다면 엄마표 떡볶이와 비슷하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방학이 시작되기 얼마 전부터 한솥 나오던 떡볶이는 나의 방학과 함께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반찬 투정이란 것은 해본 적 없는 어떤 의미에선 아주 착한 딸이었기에, 2주 동안은 아주 맛있게 정말 맛있게 먹었다.


아침에 일어나 떡볶이가 있는 냄비를 확인하고 한 스푼, 점심에 한 스푼, 저녁엔 남은 것까지 몽땅 긁어먹어 설거지까지 완료. 그렇게 2주를 보냈다. 그렇게 2주가 지나고 월요일이 지났다. 평소와 같이 냄비를 열었을 때. 그전과는 알 수 없는 어떤 기분에 스스로도 당황했다. ‘아, 이건 못 먹겠는데’라고 생각하고 또 한 스푼을 떴다. 그럼에도 냠냠 아주 맛있게 잘 먹었다. 그렇게 점심도 먹고 저녁도 먹었다.


그렇게 또 2주가 흘렀다. 떡볶이만 4주. 삼시 세 끼로 먹으니 이제는 떡볶이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약간 신물이 날 것 같았다. 5주 차가 되고 오랜만에 저녁상에 둘러앉은 엄마에게 한마디를 건넸다.

“엄마, 이제 더는 안될 것 같아. 더는 못 먹겠어.”

엄마는 내 말에 깜짝 놀랐다. “네가 워낙 잘 먹는 것 같아서. 게다가 설거지까지 깨끗하게 하고. 그래서 좋아하는 줄 알았지.”

그런 엄마의 말에 나는 더 놀라 “엄마, 어느 고딩이 떡볶이를 5주나 먹어.”

둘 사이에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와하하하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어찌 보면 나는 이 일에 정말 자유로울 수 없었다. 수박 한 덩이도 며칠씩 세끼로 먹어댈 만큼 좋아하는 것에는 홀릭이 되어 계속 먹었던 나였기에.


그때까지는 일평생 가정주부였던 엄마였기에 집으로 돌아오면 그 자리에 엄마가 항상 있었다. 항상 “엄마~”하고 소리치고 들어가곤 했었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떡볶이 시절의 엄마는 언제나 뒷모습만 기억이 난다. 아침에도 없고 점심에도 없고 저녁에 잠깐 얼굴만 보고 방으로 들어가는 모습. 그 고단할 일상의 변화에서도 엄마는 늘 나의 식사를 챙겼다. 그것이 비록 슴슴하고 맛도 오묘한 이상한 떡볶이라도, 게다가 딸이 지겨워할 거라곤 미처 생각도 못하는 우직한 엄마. 자식 먹이겠다고 이른 아침에 보글보글 떡볶이를 끓였을 엄마의 모습에 그 떡볶이가 지겹다고라고 말하지도 못했던 나.


맵지도 달지도 않았던 그 떡볶이가 그 맛을 유지하기 위해 일정한 온도에 보글보글 계속 끓여지듯이 우리 인생도 그렇게 은근히 끓여지듯 달리고 있다는 것은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때의 엄마를 생각하면 왠지 짠한 마음이 들어 요즘의 엄마를 응원하게 된다. 지금의 엄마는 어느 때보다도 더 바쁘다. 그때의 엄마가 생계를 위해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왔다면 지금은 누구보다 바쁘고 활기차게! 자신의 인생을 하루하루 꾸려가고 있다.  월, 수, 금요일은 손녀 돌보기, 화, 목요일은 미술관 봉사활동, 토요일은 문화원 도슨트 등 엄마의 일주일은 그 누구보다 바쁘다.


지금도 가끔 그 슴슴한 떡볶이가 먹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그리운 건 그 맛만은 아닐 것이다. 그때의 추억과 현재의 기억, 그리고 인생의 맛도 어느 정도 알아버린 지금, 그 떡볶이 맛이 인생의 맛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일지도 모르겠다. 그때의 온전한 그 맛은 아니더라도 엄마에게 떡볶이 한 접시 대접해 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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